간(簡)은 한국 예술사 자료에서 단독의 용어로도 쓰이고, 간고(簡古), 간아(簡雅), 간이(簡易), 간약(簡約), 간정(簡靜), 간직(簡直), 간고전아(簡古典雅), 간엄수고(簡嚴邃古), 간이유법(簡而有法) 등의 복합어로 쓰였다. 이때 ‘간(簡)’은 ‘천박(淺薄)’ㆍ‘간루(簡陋)’가 아니고 간하면 할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간고(簡古)는 간솔(簡率)하고 고박(古朴)한 예술풍격을 가리킨다. 한국 예술비평 자료에서 간(簡)의 개념을 미학적 의미에서 사용한 예들을 보면, 간(簡)을 미학적 개념으로 사용한 예와 간(簡)을 수사법과 관련시켜 기능적 개념으로 사용한 예들로 크게 갈린다. 그 둘은 서로 관련이 깊은데, 이들은 다시 다음과 같이 세분할 수 있다. (1)간(簡)을 여러 풍격이나 미학의 한 개념으로 파악하는 관점, (2)한유(韓愈)나 유종원(柳宗元), 혹은 사마천(司馬遷)의 산문이 지닌 미학적 성취를 기준으로 간(簡)의 미학을 논하는 관점, (3)경전이나 성리학자들의 글을 간(簡)의 미학을 구현한 것으로 파악하는 관점, (4)간(簡)을 창작물의 최고 미학으로 파악하는 관점, (5)성리학, 경술 혹은 학문 일반에 근본을 둔 문학의 미적 경계를 간(簡)으로 보는 관점, 이 그것이다. 고문가들은 고문의 수사적 원리를 간(簡)에서 찾았다. 비지체(碑誌體)의 산문에서는 특히 간(簡)의 미학을 중시하였다. 고문에서 간(簡)의 미학은 수사적 기법상의 간(簡)에 의해 구현된다. 이의현(李宜顯)은 『도협총설』에서, 특정한 산문 문체를 모방한다고 해서 간이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간이함만 추구하는 것이 최상이 아니라, 평창(平暢)과 간오(簡奧)를 문장의 성격에 따라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간(簡) 개념은 문학적으로는 산문의 편법ㆍ장법에서 서술 대상의 초점을 부각시키는 때에 이루어질 미학성을 가리킨다. 한문산문은 당송고문이든 의고문이든 소품문이든 일반적으로 간(簡)의 미학을 추구하였다. 간(簡)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수용자 측에게 기대하는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 때 최선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근대 이전의 독서층은 간약(簡約)을 중시하여, 시문의 선별에서 간(簡)의 방식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또한 자형, 자체에서 예서(隸書)를 간(簡)의 원리를 구현한 글자체로 보기도 하였다. 근대 이전에는 인간과 예술의 관계를 불가분리의 관계로 보았으므로, 내면의 온축을 바탕으로 간(簡)의 미학을 실현하는 것을 미학의 높은 가치로 보았다. 조선후기에는 한문산문의 문법을 고정적인 것으로 보지않는 활법(活法)의 관념이 발달하면서, 간(簡)의 본래적 개념에만 한정하지 않으려는 사고도 나왔다. 하지만 근대 이전의 지식인은 책임의식과 자기수양을 매우 중시하여, 내면의 온축을 바탕으로 문학 등 예술에서 간(簡)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을 지고(至高)의 이념으로 삼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더구나 한문 문언이 지닌 특징은 사유과정의 축약과 행문의 간결성을 실현하기에 용이하여, 한문 문언을 구사한 문학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간(簡)의 미학을 지향했다고 말할 수 있다.
簡という概念は韓国芸術史の資料の中で独立語としても登場し、また簡古、簡雅、簡易、簡約、簡靜、簡直、簡古典雅、簡嚴邃古、簡而有法などの合成語としても良く見える言葉である。その場合、それは淺薄ㆍ簡陋とは区別される、簡すれば簡するほどいっそう美しくなる境界を意味する。例えば簡古とは簡率にして古朴な芸術の品格をいう。韓国芸術批評の資料から簡の概念を美学的な意味で使った例を調べると、それを美学的概念として使った例と、修辞法と関連して機能的概念として使った例とに、大別することができる。その二つは相互深い関連を持つものであるが、それらはさらに次のように細分される。(1)簡を風格の一種、或は美学の概念として把握する観点、(2)韓愈や柳宗元、あるいは司馬遷の散文が持つ美学的成就を基準として簡の美学を論じる観点、(3)経典や朱子学者らの文章を簡の美学の具現として把握する観点、(4)簡を創作物の最高の美学として把握する観点、(5)性理学、經術あるいは学問一般に基づいた文学の美的境界を簡ととして把握する観点、がそれである。古文家らは古文における修辞の原理を簡に求めた。碑誌體の散文においては特に簡の美学を重視した。古文における簡の美学は修辞的技法によって具現される。李宜顯は陶峽叢說の中、ある特定の散文文体を模倣することで簡易になるわけではなく、また簡易だけを求めることが最上でもない。平暢と簡奧を文章の性格によって追求すべきである、と言った。簡の概念の文学的な意味は、散文の篇法ㆍ章法においての叙述対象の焦点を浮き彫りにする際に生じる美学性をいう。漢文散文は唐宋の古文を始め、擬古文や小品文までみな簡の美学を求めたといえるだろう。簡は話題をより効果的に伝達し、収容者側に期待する効果を引き出せる時、最善の状態に至ったと言える。また近代以前の読書人は簡約を重んじ、詩文の選別において簡の方式を主張した場合もあるし、字型や字体においては隸書を簡の原理を具現体と見なした場合もある。前近代には人間と芸術とを不可分の関係と認識し、芸術においても内面の蘊蓄に基づく簡の美學を実現することこそその価値の高いものと思っていた。朝鮮後期においては漢文散文の文法を固定的ではないものと見なす活法の観念が発達し、簡の概念をその本来的な意味に限定させない考え方も出現した。しかし、前近代の知識人は責任意識と自己修養を非常に重視し、文学や芸術においてもその内面の蘊蓄に基づいて簡の美学を求めることを至高の理想としていた、ということも否認しえない。また、思惟過程の縮約や行文の簡潔を実現しやすいという漢文文言の特徴は、文学において意識的にせよ無意識的ににせよ簡の美学を志向させたといえるだろ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