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3·1운동 이후의 역사적 사건들인 제주 4·3사건, 대구 10·1사건, 여수·순천 10·19 사건과 4·19 이후의 역사적 사건들인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등의 법적 성격을 규명하고, 헌법전문의 개정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3·1운동은 기존의 국내 여러 봉기와는 다른 여러 특징이 있어 운동이 아닌 혁명이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독립 혁명을 하면서 33인의 대표가 서명한 미국 독립선언서에는 혁명권과 저항권을 따로 구분하여 명시하지 않고 저항권만 명시하였다. 한국도 일제에 대한 독립 전쟁을 하면서, 세계 최초의 시민혁명인 미국의 예를 따라 33인의 대표가 기미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둘째, 제주 4·3사건, 대구 10·1사건, 여수·순천 10·19사건은 반란이나 폭동이 아닌 항쟁 또는 봉기에 해당된다.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의 학살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한다. 헌법 이론적으로는 불법권력에 대한 저항권 행사에 해당될 것이다. 셋째, 4·19는 정권을 뒤집은 사건이며 한국 시민들에게 민주주의 정신을 똑바로 심어주었다. 4·19는 한국 민주주의의 첫 승리였고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직접 정권을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정치적 의의를 가진 혁명이다. 그래서 정치학자들은 8.15 광복이 '첫 번째 해방'이었다면, 4월 혁명은 '두 번째 해방'이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법적으로 4·19는 사회경제적 체제변혁과 같은 적극적 목적의 혁명이라기 보다는, 이승만 불법권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로 법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언어 유행적으로 4·19혁명이라는 표현에 익숙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치적으로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하는 것과는 별도로 법적으로는 혁명으로 보기에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 헌법사에서 헌법전문에 4·19혁명이라는 표현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넷째,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 등의 법적 성격은 불법권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의 행사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국가정체성 및 국가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헌법전문을 개정의 필요성이 있다. 새로운 헌정사적 사실을 추가할지 여부와 미래지향적으로 새로운 헌법적 가치를 제시할지 여부 등이 많은 논의를 거쳐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5·18 왜곡이 반복되는 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5·18의 헌법전문 수록이며 여야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만이라도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4·19 이후의 민주화운동들인 부마민주항쟁, 6·10항쟁, 촛불시위 등을 모두 헌법전문에 담는 것은 전문의 간결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5·18이 진행된 광주는 1980년 이후 진행된 모든 민주화운동의 모체이다.
This article identifies the legal characteristics of historical events after the March 1st Movement, such as the Jeju 4·3 incident, the Daegu 10·1 incident, the Yeosu·Suncheon 10·19 incident, and the Buma Democratic Uprising,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and the June 10th Uprising, and suggests the direction of the revision of the full text of the constitution. I think the March 1st Movement should be called a revolution, not a movement, because it has several characteristics that are different from many existing domestic uprisings. During the independence revolution of the United States, the U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signed by 33 representatives did not separately specify the right to revolution and resistance, but only the right to resistance. During the war of independence against Japanese imperialism, Korea followed the example of the United States, the world's first civil revolution, and signed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Second, the Jeju April 3rd Incident, the Daegu October 1st Incident, and the Yeosu/Suncheon October 19 incident correspond to insurrection or uprising, not rebellion or riot. The focus should be on the slaughter of civilians by public power. Constitutional theory would correspond to the exercise of the right to resist illegal power. Third, April 19 overturned the regime and instilled the spirit of democracy in Korean citizens. April 19 was the first victory of Korean democracy and was a revolution of great political significance in that it was the first direct power in modern history. So political scientists point out that if August 15 liberation was the 'first liberation', the April Revolution was the 'second liberation'. However, legally, it is more appropriate to understand the legal nature of April 19 as the exercise of the people's right to resist Syngman Rhee's illegal power rather than a revolution for active purposes such as socio-economic system transformation. It is true that language is familiar with the expression April 19 Revolution, but apart from appreciating its meaning politically, it is considered unreasonable to view it as a revolution legally. The full text of the constitution has never been described as the April 19 Revolution in our constitutional history. Fourth, I think it is correct to view the legal nature of the Buma Democratic Uprising, the May 18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and the June 10 Uprising as the exercise of the people's right to resist illegal power. There is a need to revise the full text of the constitution to clarify the national identity and the values the state should aim for. Whether to add new constitutional facts and present new constitutional values in a future-oriented manner should be decided after much discussion. The fact that the repetition of the May 18 distortion can be fundamentally solved is the full text of the May 18 Constitution, and I think one way is to push for amendments even if the ruling and opposition parties have formed a consensus. However, it is a problem that including the democratization movements after April 19 in the full text of the constitution, such as the Buma Democratic Uprising, the June 10 Uprising, and the candlelight protests, may harm the simplicity of the specialist. Gwangju, where the May 18th Movement took place, is the parent of all democratization movements that have taken place since 1980.
Ⅰ. 들어가며 - 문제의 제기
Ⅱ. 3·1운동은 혁명인가?
Ⅲ. 제주 4·3사건, 대구 10·1사건, 여수·순천 10·19 사건은 반란인가, 항쟁인가?
Ⅳ. 4·19는 의거인가, 혁명인가?
Ⅴ. 부마민주항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법적 성격
Ⅵ. 나오면서 - 정리 및 헌법전문의 개정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