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문학 분야에서는 디지털화, AI처리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운위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한문학을 좁은 의미가 아니라 광의의 의미로 파악하고 각종 양식 사이의 상호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문학 연구는 원전의 문맥을 재검토하고 역주 방법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나공원(羅公遠)의 은교(銀橋)’ 전고 활용의 역사를 예로 들었다. 한시문의 독해와 양식 분석에서는 같은 전고를 채용하더라도 그 활용 양태에 나타난 지식정보 집적 방식과 사유 양식의 변천사를 추적해야 하며, 전고를 활용한 풍간 제시와 서사의 확장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 처음에 김시습(金時習)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을 통해 나공원이 당나라 현종에게 세간(世間)과 방외(方外)는 양립할 수 없음을 말한 사실에 관심을 두어, 지방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나공원의 어법을 빌려 세간과 출세간은 길이 다름을 말했다. 이것은 ‘은교[유월궁(遊月宮)]’ 전고와는 다르다. 그런데 조선 전기에 은교[유월궁(遊月宮)]의 전고를 사용한 부(賦), 고시(古詩), 표(表)는 동일한 전고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활용하고자 시도하여, 서사를 확장하고 풍간의 기능을 증대시켰다. 또한 이목(李穆)의 「속당명황유월궁기(續唐明皇遊月宮記)」는 허구의 서사구조를 구성하여 이른바 소설의 양식을 갖추기까지 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및 조정이 문인-지식인의 교양을 사실상 지도하여, 시(詩), 부(賦), 표(表) 등 각종 양식이 균형 있게 발달한 것이다. 특히 조선전기의 조정은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하고 과시할 필요에서, 문인-지식인들이 시문에서 전고(典故)에 뿌리를 둔 화미(華美)한 사어(詞語)를 이용하여 서사와 논의를 발전시키도록 유도했다. 이에 따라 조선전기의 문인-지식인은 동일한 전고를 각종 양식의 시문에서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공통의 문화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조선 후기에는 문인-지식인의 층이 다양하게 되고, 조정의 지도 노선에 종속하지 않는 비교적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기존의 전고와는 다른 전고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시문에서 ‘은교’는 ‘달’을 뜻하는 상투어의 수준으로 변화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The introduction of new technologies such as digitization and AI processing is currently being discussed in the research field of Sinographic literature. To meet these technological demands, it is necessary to define Sinographic literature broadly and pay attention to the interrelationships between various writing styles. Therefore, research on Sinographic literature requires a review of the context of the original text and a reconsideration of methods for translation and annotation. This paper aims to demonstrate how quotations from the same literary reference have developed various methods of concentrating and contemplating knowledge, and of expanding narrative and criticism throughout literary history. To verify this, this paper examines the literary history of quoting the reference of “Luo Gongyuan's Ŭn'gyo (the silver bridge).” In the earliest example, Kim Sisŭp paid attention to an anecdote in T'aep'yŏnggwanggi Sangjŏl, where Luo Gongyuan told Emperor Taizong of Tang that the mundane world and the outside world cannot coexist. He referred to Luo Gongyuan's words to illustrate how life and the path to a successful career differ in a letter to a governor. However in the early Chosŏn Dynasty, poetry, rhapsody, and statements that used the reference of “Ŭn'gyo [the tour in the Lunar palace]” expanded narrative and enhanced criticism by utilizing the same anecdote in different and creative ways. Additionally, Yi Mok's “Sok tangmyŏnghwang yuwŏlgung ki [The sequel to the prominent Tang emperor's tour of the Lunar palace]” established a fictional narrative structure in a novel-like style. During the Chosŏn Dynasty, the court significantly influenced literati culture, leading to the balanced development of various writing styles, including poetry, rhapsody, and statements. In particular, the early Chosŏn court encouraged literati to develop narratives and discourses using glamorous expressions based on literary references. This was intended to form and showcase an independent civilization. Accordingly, early Chosŏn literati quoted the same references in their various writings, sharing a common cultural sense. However, in the late Chosŏn period, the social stratum of literati diversified, leading to relatively free compositions not subordinate to court guidance. This allowed literati to freely utilize literary references. As a result, “Ŭn'gyo” became a cliché term referring to the “moon” in late Chosŏn poetry and prose.
1. 서론
2. 전고의 확인과 역주 방법 재고
3. 전고 활용에 나타난 지식정보 집적 방식과 사유 양식의 변천사
4. 전고를 활용한 풍간 제시와 서사의 확장 : 한국한시문의 한 특징
5. 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