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시기 우리나라의 아속(雅俗) 논의는 문학 작품의 질적 수준에 대한 평가로, 작품이 이룩한 경지나 추구하는 목표 또 그 목표에 나아가는 방법이 도덕적ㆍ교육적ㆍ심미적ㆍ예술적 정당성과 우수함을 지녔을 경우 아(雅)한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속(俗)된 것으로 평가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아속 논의는 포괄적이고 관념적인 의미를 지닌 것이었고, 당시 문학의 주체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속 논의는 조선 후기에 오면서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전 시기까지 아의 영역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속된 것들을 아의 영역으로 불러들이면서 아와 속의 경계에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조선 후기 아속 논의는 아가 아니라 속에 대한 주목에 의해 나타났고, 전통적인 아의 범주와 위상에 대한 인정 아래 이루어졌으며, 속이 아니라 아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었고, 전통적인 아의 가치와 의미를 강조하는 의식을 불러오게 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나타난 속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아속의 경계에 균열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그 균열은 전면적인 것이 될 수도 없었고, 당시 문학의 주체 대부분에게 인정받지도 못했다. 또 시기를 더해가면서 조선 후기 일부 문인들에 의해 시작된 속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점차 하나의 경향으로 굳어졌지만, 이런 경향 역시 속이 가진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한 인정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결국 조선 후기의 아속 논의는 속의 세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아의 영역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The discussion of elegance and secularity in Korea during the pre-modern period was an assessment of the quality of literary works, which was evaluated as a elegance if the work had moral, educational, aesthetic, and artistic legitimacy and superiority, and if not, they were considered secularity. As a result, all subjects of literature at the time had no choice but to agree on the discussion of elegance and secularity in Korea, which had a comprehensive and ideological meaning. However,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se elegance and secularity discussions gradually began to crack. Confusion at the boundary between elegance and secularity began to occur when vulgarities that had not been recognized as the realm of elegance until the previous period were brought into the realm of elegance. The discussion of elegance and secularity in the late Joseon Dynasty was made by attention to secularity, not elegance, and was done in the recognition of the category and status of traditional elegance, and it was intended to expand the realm of elegance, not secularity, and it was characterized by bringing up ideas that emphasize the value and meaning of traditional elegance. However, even though the new perception of secularity that emerg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caused a crack in the boundaries of elegance and secularity, the crack could not be comprehensive and was not recognized by most of the subjects of literature at the time. In addition, as time went on, a new perception of secularity started by some literary person in the late Joseon Dynasty gradually became a trend, but this trend also did not develop into recognition of the meaning of secularity itself. In the end, it can be seen that the discussion of elegance and secularity in the late Joseon Dynasty is not for the world of secularity, but for the realm of elegance.
1. 서론
2. 아속(雅俗)의 개념과 대립의 양상
3. 조선 후기 아속(雅俗) 논의의 특징
4.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