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 연구자는 중국 신문 소재 단재의 논설을 발굴하려고 하였다. 신석우는 “大統領에 馮國璋, 國務總理에 段祺瑞가 있어 治政할 때” 단재가 중화보에 논설을 썼다고 밝혔다. 이 시기는 1917년 7월 1일부터 1918년 10월 10일 사이가 된다. 당시 북경에서는 중화신보가 발간되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북경 중화보라 일컬었다. 신석우는 또 하나 <矣>자를 오자 내어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 1918년 5월 19일 「政府之辨明」에는 “矣”자를 “一笑”로 오자하였으며, 다음날 신문에 정정보도가 실린다. 그 내용은 신석우의 언급과 정확히 일치한다. 단재가 북경에서 중국신문사에 있었다는 것은 당시 신문 기사에서도 발견이 되고, 또한 당시 여러 知友들의 회고에서도 나온다. 그렇다면 당시의 정황이나 여러 사실들을 고려할 때 <博>이라는 필명은 신채호의 또 다른 필명으로 보인다. 박의 글은 상해 『중화신보』에 평론 17편, 『북경중화신보』에 논설 1편, 시평 101편 등 총 119편이 실려 있다. 이 글들은 모두 단재의 글로 보인다. 이 글들을 단재의 글로 간주할 때 북경에서 단재의 문필 및 중국 문인들과의 교유 활동, 그리고 그들의 단재 기념사업 등을 좀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점이 있다. 발견된 119편의 글과 단재 글의 문체, 사상에 대한 검토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에서 논의를 마쳤다. 더욱 엄정하고 객관적인 연구를 통해서 <박>과 단재의 동일성 여부를 판가름할 필요가 있다.
1. 들어가는 말
2. ‘중화보’의 실체─『중화신보』 규명
3. 방법론 탐색─‘矣’에 대한 접근
4. 時評 기자 ‘博’의 글들
5. 증언을 통해 본 博과 단재의 일치 유무
6. 중국신문 기자로서의 정체성과 단재의 주체성
7. 중국 문인들과 단재의 교유
8. 마무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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