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사회를 조화와 협력으로 인도하려는 사상은 한비자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훗날 이 사상을 우리는 법가라고 칭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통제하려는 관점에서 시작된 법가사상은 자연주의의 노장사상과 가장 대별되고 있는데, 어느 것이 우위에 있는 것인가는 여전히 오늘날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국시대 말기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고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충언을 저술로써 전하고자 하였던 한비자의 사상은 엉뚱하게도 진나라 시황제에 의해 빛을 발하게 된다. 한비자는 법을 중심으로 시대의 혼란을 마무리하면서 안정된 통치를 꾀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 인간의 도덕보다는 공적개념인 법을 중심으로 하는 법치사회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한비자의 사상은 진나라가 오래 존속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가계열의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 역사속 한 유파로 사라지게 되었다. 법가는 전국시대의 여러 유파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이면서 실천력 있는 정치사조를 내세우면서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사상적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전국을 통일한 후에도 항상 불안하기만 했던 시황제로서는 한비자가 주장한 강력한 왕권을 통한 통치방법을 내세운 법가사상에 지극히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법가가 학파로서 위치를 차지한 배경을 보면, 춘추전국 시대에 접어들어 유가의 법이 제후들의 권익을 옹호하였으니, 이에 법가는 백성을 착취 억압하는 유가에 대한 반발 심리로 등장하였다. 유학은 그것이 지닌 이상주의적 성격 때문에 秦이 천하를 통일하는 이념으로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 당시의 현실은 국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엄격한 법가적 전제 질서가 요구되었으며, 천하 통일의 이념으로는 법가의 현실론이 차지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법가는 당시 강력한 통치 이념을 등장시키고 법치를 강조하게 되었다. 한비자는 국가가 부국강병을 이루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군주의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하였고, 이를 위한 조언은 한비자의 저술에서 다양한 제시와 주장을 토대로 드러났다. 법ㆍ세ㆍ술을 종합한 그의 정치사상은 각 시대별 정치의 한계점과 결함을 지적하면서도 보완점을 찾아냄으로써 한나라에 맞는 이상적인 정치사상을 제시하였다. 한비자는 이러한 법치를 근본으로 안정된 사회를 구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며, 법 앞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을 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법의 존엄이 살아 있는 가운데 강력한 군주제를 도입하여 부국강병을 도모하려 하였던 법가의 정신과 노력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환영 받을만한 가치는 있다. 한비자 정치사상의 한계는 법을 중앙집권체제의 확립과 천하 패권의 장악을 위한 국가 경영과 통치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던 것인데, 이는 군주의 폭정에 대해 어떠한 제도적 제어 장치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제왕만을 위한 사상이라고 치부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부국강병을 통한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의 출현을 필요로 하여 사상을 전개하였던 것은 그 시대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가능했던 방법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한비자가 주장하고자 했던 법가사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혼란한 국가 상황을 가장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나, 자칫 그 제도의 적절한 운용이 되지 않으면 오히려 양 날의 검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Political Idea of leading a country in harmony and coopration by the law has been completed by Han Feizi and it was named by later generations as 'legalist tradition.' Legalist tradition which was born according to the perspective of controling human nature contradicts the naturalist idea of taoist philosophy. It is not a exaggeration to say that even people today still debate over this very subject. Han Feizi's legalist idea which was introduced in his advice on politics during the final stage of Warring States period in order to end the social confusions. Ironically, this idea was not brought into light until the time of Shih Huang Ti of Qin Dynasty. Han Feizi pursued idea of legal power in order to finish social confusions in his time and tried to stablize the political structure of the government. He belieived in the implemention of country governed by the law as part of public services, instead of moral standards. His idea has never been fully implemented and has become subject for criticism by confucianists and discarded by the end of Qin Dynasty which lasted only for short period, remembered simply as one of schools in governing ideologies. Legalist tradition, among many other political trends, was unique in the way that has raised the governing trend which was most realitic and practical in the time of Warring States period and settled as the political background of Qin Dynasty which was the first unified state in the history of China. It was natural for Shih Huang Ti, feeing unstable after the unification, to be drawn to the legalist tradition of Han Feizi that supported strong soverign power of King. Legalist tradition, as a philosophical school, emerged with a defiant spirit against the confucianism which began prospering in the beginning of Warring States period in favor of rights and benefits of feudal lords who explotied and oppressed the people. Confucianism, due to its idealistic nature, was not a sufficient driving ideology for Qin Dynasty in acheiving the unification hence less influential. Under such circumstance the Qin Dynasty required a stricter legal system that may enhance the maximization of state power. Practical legal tradition was most suitable for the driving ideology for unification at the time. For this reason Qin Dynasty adapted a strong ruling ideology and focused more on the constitution and law. Han Feizi stated through various suggestions and advices in his writings that a country requires strong dominion over the ruled in order to achieve the stability, great wealth and national prosperity. His idea, incorporating law, power and governing technique, pointed out the limitations and defects of the present system and at the same time suggested corrective measures for the weaknesses in search of the best political ideology. Han Feizi tried to find the way to implement stable society endlessly based on his idea of legal tradition and equal applications of the laws for all people regardless of social status. He believed, with high respect for the law, that introduction of strong power of king will help build national wealth and prosperity. His ideas and efforts to introduce the legal tradition deserve respect even in today's world and should welcome to a certain degree. However, the limitation of his political ideology is found in the fact where he regarded the law simply as a tool for holding supremacy of a country and ruling of its people, without meantioning about any systematic restraining measures against tyranny of king, containing his ideas to ruling method for autocracy only. Despite its limitations, taking into account the cultural differences of the time, the development of his ideology which necessates wealth and prosperity backed by a strong power of king was the most realistic and viable option in his time. The legal tradition by Han Feizi may be the most effective way to clear up the confusions in a country but it can be weapon against people without proper application.
Ⅰ. 들어가는 말
Ⅱ. 법가사상의 출현과 전승과정
Ⅲ. 한비자의 생애와 정치사상
Ⅳ. 나가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