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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9세기 결혼의 교회화: De Divortio Lotharii regis et Theutbergae reginae를 중심으로

The churchifying of marriage in the 9th century: De Divortio Lotharii regis et Theutbergae reginae

DOI : 10.32961/jwhc.2023.12.6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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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말 카롤루스 마그누스(Carolus Magnus)의 프랑크 왕국은 크게 4개의 왕국으로 분할되었고 형제공동통치(confraternitas)라는 명분과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을 갖추며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의 왕국을 더욱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와 갈등의 불씨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특히 동·서프랑크를 양쪽으로 맞대고 있는 로타링기아(Lotharingia) 왕국의 로타리우스(Lotharius) 2세는 삼촌들에 대한 정치적·군사적 긴장감을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로타리우스 2세에게는 맏형 이탈리아의 황제 루도비쿠스(Ludovicus) 2세와 동생 카롤루스(Carolus de Provinciae) 2세 역시 긴장과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에 로타리우스 2세는 로타링기아 왕국의 남쪽을 확장할 전략적 선택으로 정략결혼을 감행하게 된다. 855년 로타리우스 2세는 자신의 연인 발트라다(Waldrada)를 포기하고 로타링기아 왕국 남부에 토지와 대수도원들을 소유한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던 대 보소(Boso the Elder)의 딸 테우트베르가(Theutberga)와 정략결혼을 감행했다. 불행하게도 황제 로타리우스 2세의 정략결혼은 850년대와 860년대 카롤링거 왕조의 주요 정치적 쟁점을 보여주는 이혼으로 결말짓는다. 이 논문에서는 9세기 말 카롤링거 왕조의 정치적 쟁점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로타리우스 2세의 결혼과 이혼이 가지는 정치사적 의미를 되짚어 본다. 843년 베르됭 조약(la traité de Verdun) 이후 이어지는 분할 상속으로 치열해진 프랑크 왕들의 치열한 영토 확장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로타링기아 왕국의 도약을 시도한 로

The Frankish kingdom of Carolus Magnus was divided into four kingdoms and began to find stability with confraternitas and christianity at the end 9th century. However, in reality, the kings had the intention to further expand their kingdom and the spark of conflict remained. In particular, Lotharius II of the Kingdom of Lotharingia, which bordered the East and West Franks on both sides, was not only unable to shake off political and military tension, but his older brother and younger brother's Italy and Provence were also the subject of tension and caution. Accordingly, Lotharius II entered into an arranged political marriage as a strategic choice to expand the southern part of the Kingdom of Lotharingia. In 855, Lotharius II gave up his lover Waldara and married Theutberga, the daughter of Boso the Elder, a powerful political figure who owned lands and abbeys in the southern part of the kingdom of Lotharingia. Unfortunately, Lotharius II's arranged marriage ended in divorce, a major political issue for the Carolingian dynasty in the 850s and 860s. In this paper, we look back on the political and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marriage and divorce of Lotharius II, which explosively revealed the political issues of the Carolingian dynasty in the late 9th century. The political marriage of Lotharius II, who attempted to extend Kingdom of Lotharingia amidst the fierce territorial expansion and political conflict of the Frankish kings, which intensified due to the division of inheritance that followed the Treaty of Verdun in 843, ultimately resulted in the Kingdom of Lotharingia.

Ⅰ. 들어가며

Ⅱ. 로타리우스 2세, 테우트베르가와 결혼하다

Ⅲ. 테우트베르가, 신명재판에 임하다

Ⅳ. 로타리우스 2세, 이혼에 실패하다

Ⅴ. 나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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