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제의 의료 활동과 문화적 민족주의
Paik In-je’s Medical Activities and Cultural Nationalism
- 의료역사연구회
- 의료사회사연구 [ISSN : 2635-6333]
- 제14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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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55 - 78 (2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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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 : 10.32365/KASHM.202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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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제의 민족주의 의식은 고향인 정주의 오산학교 시절부터 형성되었다. 그의 민족주의는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하면서 강화되었다. 민족차별을 실감하였기 때문이다. 강화된 민족주의는 백인제가 삼일운동에 참여하는 배경이 되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서 백인제의 민족주의는 방향을 수정하였다. 즉시독립이 아닌 실력양성론으로 수정이었다. 백인제는 근대 학문의 연구, 후진 양성, 나아가 강연과 기고를 통해 민족의 문화적 실력을 축적하고자 하였다. 문화적 실력양성론, 즉 문화적 민족주의를 실천한 것이었다. 1930-1940년대 문화적민족주의가 분열해가는 가운데서도 백인제는 독립이라는 목표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해방 후 백인제는 의료계의 재건과 정비를 위해 건국의사회와 조선의학연구회 결성에 참여하는 동시에 자신의 모교인 경성의학전문학교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좌우갈등을 통해 분단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백인제는 대한민국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하였다. 자유주의를 전제로 한 그의 문화적 민족주의는 전체주의 성격을 가진 사회주의를 수용할 수 없었다. 반공 민족주의로 성격을 명확히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반공 민족주의는 한국의 문화적 민족주의가 가지고 있던 유연성이 경직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그 근거는 백병원의 재단법인화였다. 백인제의 백병원 재단법인화는 당시 한반도에 광범위하게 공유되던 공공성 추구의 경향 속에 위치하고 있었다.
Paik In-je’s sense of nationalism developed during his student days at Osan School in his hometown Jeongju. It was further strengthened when he entered Keijo Medical School, where he experienced national discrimination firsthand. This intensified nationalism was the backdrop for his participation in the March 1st Movement. In the 1920s, Paik’s nationalism shifted toward a more pragmatic approach, focusing on building national capabilities rather than immediate independence. He sought to accumulate cultural capacity for the nation through research in modern Western medicine, nurturing future generations, and delivering lectures. Paik’s nationalism was a form of cultural nationalism. Even as the cultural nationalist movement of the 1930s and 1940s began to fragment, he never lost sight of the goal of independence. After liberation, he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reconstruction and organization of the medical community by helping establish the Geonguk Uisahoe (Nation Foundation Medical Association) and the Joseon Uihak Yeonguhoe (Joseon Medical Research Association), while also working toward the revival of his alma mater, the Keijo Medical School. Amid the country’s division by left-right conflict, Paik clearly expressed his support for the Republic of Korea. His cultural nationalism, predicated on liberalism, could not accept socialism with its totalitarian nature. This demonstrated an anti-communist nationalist stance, without eroding the flexibility inherent in Korea’s cultural nationalism. This is evidenced by the incorporation of the Paik Hospital into a foundation, aligning with the widespread pursuit of public interest, which was prevalent on the Korean Peninsula at the time.
1. 머리말
2. 백인제의 학교생활과 민족주의의 형성
3. 경성의학전문학교교수 임용과 대중계몽운동의 전개
4. 안창호와 교류 및 친일협력 거부
5. 해방과 의료계 재건 참여
6. 대한민국 지지와 백병원의 재단법인화
7.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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