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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1946년 상하이시 방역위원회의 콜레라 방역 활동: 백신 접종과 시민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The Cholera-Prevention Activities of the Shanghai Epidemic Prevention Committee in 1946: A Study on Vaccination and Citizen Response

DOI : 10.32365/KASHM.202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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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46년 상하이시 방역위원회의 콜레라 방역 활동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 위주의 방역 정책의 한계와 시민들의 반응을 다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상하이는 급격한 인구 이동과 전후 혼란 속에서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1946년 콜레라의 대규모 확산은 상하이 시민들에게 커다란 공포를 안겨주었다. 콜레라는 5월 23일 6명의 환자 발생을 시작으로, 6월부터 9월까지 급속도로 전파되어 총 4,415명의 감염자와 35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하이 위생국은 5월 31일 상하이시 방역위원회(上海 市防疫委員會)를 조직하였다. 방역위원회는 공공기관·자선단체·의료단체가 협력하여, 방역 정책에 대한 자문과 심의, 경비 모금과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 방역 업무에 대한 통합과 조정을 실행하며 전염병 대응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방역위원회는 지휘체계의 혼란, 예산 부족, 민관 협력의 유기적 연계성 결여로 인해 방역 활동에 한계를 드러냈다. 상하이시 방역위원회는 콜레라 백신 접종을 중심으로 방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방역위원회는 고정 접종소와 유동주사대를 활용하여 거주민부터 유동 인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접종을 실시하고, 접종을 받은 사람에게는증명서를 발부하였다. 그 결과 1946년 5월부터 10월까지 백신 접종자 수가 총 2,087,599명에 달했으며, 이는 당시 상하이시 인구의 46.39%에 해당했다. 또한 방역위원회는 7월 5일부터 군경(軍警)·동자군(童子軍)·보갑장(保甲 長) 등을 동원하여 거주민과 행인들의 접종 증명서를 일일이 검사하고, 이것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강제적으로 현장에서 백신을 접종시켰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백신의 효과에 대한 불신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 속에서 외출을 꺼리는 경우도 있었으며, 접종증명서를 위조하거나 불법적인 매매를 자행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방역위원회는 강제적 백신 접종을 실시하고, 접종 증명서를 발부하여 시민들의 통행과 이동을 철저하게 규제했다는 점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방역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요컨대 방역위원회는 일본 제국주의가 위생을 매개로 식민지의 지배를 강화하고 일상생활을 통제했던 방식을 더욱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했다. 이런 측면에서 방역위원회의 강제적 백신 접종은 질병의 ‘예방’과‘건강’보다는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한 방역 정책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 점령기와 국민당 통치 시기 ‘위생’은 예방접종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으며, ‘주사’를 앞세운 세균 관리는 표면적으로는 시민들의 건강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동시에 시민들의 신체와 행동을 통제하는 ‘규율’과 맞물려 있었다.

This paper focuses on the cholera epidemic-prevention activities of the Shanghai Epidemic Prevention Committee (上海市防疫委員會) in 1946 and discusses the limitations of the vaccination-based epidemic prevention policy and the reactions of citizens. At the end of World War II, Shanghai faced a serious public health crisis due to rapid population mobility and post-war chaos. Specifically, in 1946, the large-scale spread of cholera caused great panic among the citizens of Shanghai. The epidemic began with 6 cases on May 23 and rapidly spread from June to September, resulting in a total of 4,415 infections and 353 deaths. As a response, the Shanghai Health Bureau organized the Shanghai Epidemic Prevention Committee on May 31. In collaboration with public institutions, charitable organizations, and medical groups, the committee played a central role in responding to the epidemic. It consulted and reviewed epidemic prevention policies, raised funds, mobilized human and material resources, and coordinated epidemic-prevention measures. However, due to its chaotic command system, insufficient budget, and the lack of organic cooperation between civilians and officials, the committee was severely limited in implementing its activities. The committee carried out epidemic-prevention activities centered on providing cholera vaccines. It used fixed injection stations and mobile injection teams to administer extensive vaccination from individual households to mobile populations, issuing certificates to vaccinated individuals. From May to October 1946, it vaccinated 2,087,599 people, representing 54.5% of the population of Shanghai at the time. In addition, from July 5, 1946, the committee dispatched the military police (軍警), child scouts (童子軍), and security guards (保甲長) to inspect the vaccination certificates of residents and pedestrians one by one, requiring those who did not have them to be vaccinated on the spot. However, out of distrust of vaccine efficacy and concerns about its side effects, some residents were unwilling to go out, forged vaccination certificates, or engaged in illegal buying and selling activities. The committee replicated the tactics of the Japanese imperialist authorities in implementing its epidemic prevention policy, imposing mandatory vaccination, issuing vaccination certificates, and completely restricting the passage and travel of citizens. It resorted to the very means by which Japanese imperialist forces strengthened colonial rule, applying them more thoroughly and widely, controlling citizens’ daily lives in the name of public health. From this perspective, it can be said that the purposes of the committee’s mandatory vaccination had to do more with “monitoring” and “control,” rather than “health” and “disease preventio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Kuomintang rule, “hygiene” promotion and vaccination were closely related. The bacterial management through “injection,” ostensibly aimed at protecting citizens’ health, was consistent with the “discipline” aimed at controlling citizens’ bodies and behaviors.

1. 머리말

2. 상하이시 방역위원회의 조직과 운영

3. 강제적 콜레라 백신접종의 시행

4. 백신 접종의 효과와 시민들의 반응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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