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초 민간 전문 여성예술인 단체 ‘한성기생조합소’의 설립과정과 인가(認可)일에 관한 연구 - 조선인들의 기록(대한제국기 발행 8종의 『근대신문』)을 중심으로
A Study on Establishment Process and Approval Date of the First Association of Women Artists in Korea,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 Focusing on Korean Records (8 Kinds of [Modern Newspapers] Published During Korean Empire Period)
- 95
2025년 8월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최초의 기생조합’인 ‘한성기생조합소’의설립시기와 인가일 그리고 주요인물 등에 관한 내용들은 여전히 처녀지인 상태로 남아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 ‘한성기생조합소의 설립과정과 인가일’에 관한내용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규명하였다. 첫째, 본 연구는 ‘한성기생조합소의 인가일’을 학계에 보고하는 최초의 연구이자 ‘한성기생조합소’를 단일테마로 한 공동 두 번째 학술논문이다. 그리고 기생 관련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58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약 70년, 그리고한성기생조합소가 실제 설립·인가된 1908년 이후부터 약 120년만에 이 내용을학계와 일반사회에 보고하는 첫 번째 연구라는 점에서도 그 가치와 그 의의를 둘수 있다. 둘째, ‘기생조합 시초’이자 ‘한반도 최초의 민간 여성예술인 단체’인 ‘한성기생조합소’는 대한제국 말기인 ‘1908년 12월 23일자 『제국신문』 「기조합소 쳥원 승인」’ 기사를 통해 “1908년 12월 23일경 한성기생조합소 설립 청원이 승인되었고, 경시청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허(認許)·인가(認可)를 받았음”이 밝혀졌다. 셋째, ‘1908년 12월 23일자 『제국신문』 「기조합소 쳥원 승인」’ 기사는 ‘기생조합의 효시’이자 ‘근대 기생제도의 시작’인 ‘한성기생조합소가 1908년 12월23일경 일제 통감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설립·인가(認可)되었음’이 확인되는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한 기록이다. 넷째, ‘한성기생조합소’는 궁중과 다양한 근대 공연장 등에서 고종, 순종 등의 황족과 국내외 귀빈 그리고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내공연에서부터 1910 년대 ‘오사카, 고베, 교토, 나고야, 도쿄 등 일본 대도시 순회공연’과 ‘워싱턴 등의미국 원정공연’ 등 우리나라 전통예술문화인 궁중 정재(呈才)와 여악(女樂)의 계승뿐만 아니라 이의 근대화·대중화·세계화에 가장 앞장섰던 개화(開化)한 ‘민간 전문여성예술인 단체’였다. 다섯째, ‘한성기생조합소’의 수많은 자선공연(재능기부·수익금기부·자비(自費)기부)과 같은 ‘애민활동’과 다양한 ‘애국활동’들은 이후에 설립된 ‘기생조합과 권번기생들’의 대사회적 사상(思想)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의 자신들의 사회적 책무(責務) 의식에 크나큰 영향을 미쳐 일제강점기 동안 수많은 경향(京鄕)의 ‘기생조합’과 ‘권번’ 기생들에 의해 이러한 ‘자선공연’과 ‘애민·애국활동’은 끊임없이 꾸준히 이어져 행해졌으며, 이전 시기보다 더욱더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전개되어갔다. 즉 ‘한성기생조합소’는 이후의 ‘기생조합(권번)’들의 사회적 역할과 다양한활동의 틀을 마련한 ‘한반도 공인 전문 여성예술인 단체의 선구(先驅)’였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에서 우리가 절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의 기생(妓生)들’은 대한제국 뿐만 아니라 ‘일제 통감부와 조선총독부조차도 공인(公認)한 가무주(歌舞奏) 전문 여성예술인들’이었다”는 것과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와 이미지를 왜곡시킨것’은 ‘일제(통감부·조선총독부)’가 아니라 ‘소수의 일본인들’과 ‘이들이 쓴 내용을그대로 재인용해서 퍼트린 맹목적인 일본인들’”이라는 사(史)실이다. 오히려 “일제‘조차도’ 기생은 조선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전문 여성예술인들임 공인하였다”라는 표현이 맞는 사(史)실이고, ‘우리나라 기생의 역사와 이미지를 올바르게 재정립’시키기 위한 올바른 접근방식(패러다임의 전환)임을 적극적으로 전파ㆍ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생 역사왜곡 3서(書)’인 『조선개화사』를 쓴 쓰네야 세이후쿠(1901), 『조선풍속집』을 쓴 이마무라 도모(1914초판, 1915재판, 1919개정3판), 『조선해어화사』를 쓴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능화(1927)가 ‘한국 기생의 역사와 이미지를 심각하게 왜곡시킨 대표적인 일반 일본인들과 친일파’라면 『妓生「もの言う 花」の文化誌』, 作品社(유재순 역, 『말하는 꽃 기생 妓生』, 소담출판사, 2002)를 쓴 카와무라 미나토(2001)는 ‘한국 기생의 역사와 이미지를 심각하게 왜곡시킨 대표적인현대 일본인’이다. 왜곡된 기록들의 무검증(無檢證) 인용은 스스로를 역사왜곡의테두리 안에 가두는 것이다.
This study first examined the process of unrealized “Gisaeng Company” establishment plan, which had been initiated under the royal administrative reforms of November 1907. Then, this study investigated the establishment process and final approval date of the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in detail, focusing on the Korean records in 1908, including the [Modern Newspapers] published during the late Korean Empire. First, the plan to establish the “Gisaeng Company” under the reformation of the Imperial Household Department in November 1907 was not realized. A survey of the traditional Gisaeng system on the Korean Peninsula and a reinvestigation into the personal information of the courtesans and Gisaeng husband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Gisaeng Association system by the Residency-General of Japan in September 1908. Second, the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is Korea’s first association of Gisaeng and the origin of Gisaeng association. According to the article, [Approval of Petition for Gisaeng Association], dated December 23, 1908, of the [Korean Empire Newspapers], the petition to establish the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was approved on December 23, 1908, and it was officially licensed by the Police Department. Lastly, another “Gisaeng association” was established within a month after Korea’s liberation on August 15, 1945. The name of this Gisaeng association was “Hanseong Gisaeng Union.” Thus, the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licensed on December 23, 1908, during the late Korean Empire, was Korea’s first association of Gisaeng and the origin of Gisaeng association. Meanwhile, the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and “Hanseong Gisaeng Union” that are frequently found in the records from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refer to the “Hanseong Gisaeng Association” that existed from December 23, 1908, to February 20, 1945. The “Hanseong Gisaeng Union” that appeared after the liberation on August 15, 1945, means the new “Hanseong Gisaeng Union” established after September 1945. Since the term “Hanseong Gisaeng Union” has two meanings in Gisaeng history studies, it is necessary to clearly distinguish them when citing sources.
1. 서론 : 대한제국 말기 마지막 관기출신 기생들의 ‘한성기생조합소’
2. 1907년 11월 궁중 관제개혁에 의한 ‘기생회사’ 설립 계획의 미실현
3. 1908년 9~12월 ‘한성기생조합소’의 설립과정과 인가(認可)일
4. 1908년 12월의 한성기생조합소와 해방 후 새로운 1945년 12월의 한성기생조합
5. ‘기생 역사 왜곡’은 ‘일제(통감부·조선총독부)’가 아닌 ‘소수의 일본인들’
6. 결론 : ‘한성기생조합소 인가’ 현존 유일 기록 ‘1908년 12월 23일자 『제국신문』’
참고문헌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