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세계화와 4차산업혁명과 같은 시대적 변화는 새로운 패러다임의리더십을 요청하고 있다. ‘수평적’, ‘동반자적’, ‘배려’, ‘유연적’ 등등의 다양한개념들을 적용한 리더십 모델은 서애 류성룡에게도 충분히 적용가능하다. 서애선생은 이러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실존적 인물이면서 동양적 리더십의 전형적인 역할모델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서애 선생을 재조명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있다. 서애 류성룡의 재세시는 전쟁을 경험한 혼란한 정국, 이른바 난세였다. 당시의 혼란상과 어려움을 상세하게 기술한 위대한 저서『 징비록』이 있었기에, 우리는 400년 전의 참담하고 비참한 사회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마치 오늘의 일인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 이 기록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위대한 학자로서의선생의 풍모와 삶의 흔적을 읽어내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조선중기의 난세의 시대에, 의심 많던 왕과 당파간 갈등으로 어지러운 조정에서 재상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또 외적방어와 백성들을 아울렀던 선생의 리더십은 탁월한 것이었다. 뛰어난 도학자이자 경세가로서의 류성룡의 리더십의 원천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주역읽기’와 ‘활용’이 류성룡의 리더십과 사회적 처세의 풍부한 자원과 원천이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류성룡은 역경(Iching) 을 읽으면서 얻었던 깨달음의 순간과 심사를 여러 가지의 글과 시에 남겨놓았다. 또 주역자체에 대한 연구와 메모는 『독역기의』와 『잡저』라는 책에 남기고있다. 또 주역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주역의 점서법과 『초씨역림』등의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주역이 유가(儒家)와 선도(仙道)를 연결하는 수련법의 요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선생의 학문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주역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이는 오늘날 동양사상과 사회과학의 접목을 주된 관심사로 하는 연구자들이주목해야 하는 지점이다. 이 연구에서는 서애 류성룡의『역경』에 대한 이해와 활용, 기록들에 관심을두고 그 흐름을 따라가며 정리한다. 주역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활용이 선생의리더십에 조용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보고 논의를 전개해 나갈 것이다. 동양적 리더십(주역)에서의 역할모델은 성인, 군자이다. 성인과 군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학자의 눈으로 사회적 삶을 천착한다. 이는 오늘날 사회과학의 현실인식의 논리와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격물치지’를 통한 대상인식은 변화의 학문으로서의 주역의 주된 방법론이다. 기미(幾微)와 조짐(兆朕)의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미래예측을 위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또 주역의 핵심원리를 담고 있는 ‘건(乾)괘’에 대해 서애선생이 남긴 자세한 기록을 그대로 살펴본다. 조선 중기의 선비들이 주역 건괘에 대한 해석과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료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선생이 주역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들을 살펴볼것이다. 여기에서는 일상과 서당건립, 가족의 안위는 물론 국가의 미래까지 하나의 성찰적 맥락에서 점쳐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In the rapidly changing era of Globalization and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a new paradigm of leadership should be established. New concepts of leadership such as 'horizontal, ' 'partisan.' 'considerate,' and 'flexible' models can also be applicable to Ryu Seong-ryong’s leadership. As an existential individual in wartime crisis, Ryu Seong-ryong exercised remarkable leadership, and became the paragon of leadership in traditional East Asia. Ryu Seong-ryong’s Jingbirok 懲毖錄, describes in detail the turbulent years of war with Japan. Especially, it is worthwhile to study Ryu Seong-ryong’s leadership as prime minister in wartime crisis. Especially, in terms of implementing policies for the people in times of war with Japan, Ryu exercised dramatic leadership. Among the sources of Ryu’s leadership, this article will focus on Ryu’s uses of the Iching in diverse contexts and conditions. He left essays and poems describing the moments of enlightenment while reading the Iching. In addition, he also left research notes and memos on Iching in such books as <Dokyeokgi 讀易記疑> and <Japjeo 雜著>. As to how to use the Iching, Ryu employed diverse methods. He also referenced the Yeokrim of the Cho 焦氏易林. It seems clear that the Iching had a large presence in Ryu Seong-ryong's learning and enlightenment. This article will focus on Ryu Seong-ryong's uses of Iching. The sages (聖仁) and gentlemen (君子) described in the classics, especially the Iching have been generally considered the traditional icons of leadership. The full implications of these concepts in contemporary social sciences should explored as well. “The investigation of things and the extension of knowledge“(格物致知) should served as the main method of research. This article will analyze Ryu’s detailed records on Qian 乾 hexagram as it contains the core principles of the Iching. Finally, this article will analyze the various ways in which Ryu Seong-ryong used the Iching. It will be shown how Ryu prognosticated with the Iching for such diverse issues as routines of daily life, building of local schools, family matters as well as the country’s future at the level of contemplation.
Ⅰ. 서론
Ⅱ. 현대의 리더십 논의와 동양고전의 리더십 논의
Ⅲ. 류성룡의 학문관과 주역인식
Ⅳ. 류성룡의 주역활용 리더십과 의미
Ⅴ. 맺음말: 겸손과 깨달음의 리더십으로 지켜낸 재조산하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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