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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중세 동아시아의 괴뢰희 양상 : 천민 계층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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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는 동아시아 삼국이 飛躍의 시대로 각기 변화를 추구하는 격동의 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고려․宋元․헤이안 시대를 놓고 볼 때, 이 시기는 또한 지배층과 서민층의 차별이 심화되어 지배층의 압력에 서민층의 고충이 심화되던 때이다. 이 시대의 천인은 노비가 대부분으로서 이들은 재산처럼 매매 상속 讓與가 되는 비자유인이었다. 한국의 경우, 천인으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버들고리를 만들어 파는 揚水尺, 짐승을 찾는 禾尺, 광대놀음으로 살아가는 才人, 술을 파는 기생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겐 아무런 부담도 지우지 않았고 호적에도 등록하지도 않았다. 중국의 경우, 서민에 대한 무자비한 경제적 착취와 정치적 억압은 농민을 분노하게 만들고 각지에서 계속 농민 봉기가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元代의 경우 전쟁 피폐로 인해 유민들이 많이 생겨 사회문제화 되었으며 천민인 店員 唱優 官私奴婢 등은 호적에도 등록하지 못해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으며, 이 중의 창우는 流浪藝人으로서 생계를 유지했다. 일본의 경우, 헤이안 귀족들이 풍부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자기들의 취미생활을 즐기는 동안, 惑世誣民에 견디지 못해 절로 들어가 노예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었다. 河原, 散所인들은 대표적인 예이다. 바로 이들 천민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그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대체로 농업, 목축업, 수렵, 수공업에 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특히 일부가 연희와 관계를 맺어 자신의 생활 수단을 삼았다.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는 각기 나름대로 이러한 천민들이 중심이 되어 잡기를 연행했는데, 촌락과 瓦肆 그리고 寺院, 궁중이 주무대였다. 그러나 傀儡戱 경우 한국은 중국의 영향으로 그 내용도 중국풍이 강했으나 중세 중기로 오며 독자적인 경향을 띄게 되고, 일본의 경우 한국으로부터 흘러 들어간 유랑인의 흔적이 엿보이긴 하나 곧 자국식의 놀이 내용을 갖고 유지해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좀더 확실한 내용을 위해 한국과 중국의 경우 연희시가 꽤 보여 도움이 되는데, 일본의 경우 이러한 시가 보이질 않아 아쉬움이 있다. 어쨌든 비슷한 시기에 삼국의 傀儡戱가 그 조건과 전개 양식에 있어 명칭이나 용어가 틀리긴 해도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 서언

2. 중세를 연 삼국의 시대양상

3. 천민과 연희

4. 괴뢰희 제양상

5. 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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