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축제로서 계룡산 산신제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다. ‘산천제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차지하는 계룡산 산신제의 위상이나 가치 평가에 대한 학술적인 진단을 토대로 복원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축제 현장에서는 복원의 목적이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으며, 또 계룡산 산신제의 연원이나 영험에 대한 체득이 어렵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화축제의 요체로서 계룡산 산신제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높다는 데 이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문화축제로서 복원한 계룡산 산신제를 어떻게 지속․발전시킬 것인가?’라는 새로운 해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에 필자는 계룡산 산신제의 역사성과 구비성이 등가의 위치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데 발상하여 계룡산 산신제의 역사성과 구비성을 동시에 살피는 것으로써 그 해법을 강구해 보았다. 계룡산은 조선 초기부터 춘추로 국행의 예로써 치제를 받았다. 중춘과 중추의 길일에 계룡산사, 계룡단, 계룡산단, 중악단 등에서 국왕이 임명한 두 명의 관리가 제의를 주재하였다. 이러한 계룡산 산신제의 연원을 설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종의 근원설화로서 ‘이성계가 신이한 꿈을 꾸었고, 어느 노파가 국가의 창업과 연관시켜 해몽했기에 그 노파를 위해서 춘추로 제를 올렸다.’는 줄거리를 공통의 화소로 지니고 있다. 한편 무가[무경]를 통해서도 계룡산 산신제의 전통 및 계룡산 산신의 영험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한 무가[무경]는 계룡산 산신에 대한 ‘풀이[푸리]’ 대신 국행으로서 계룡산 산신제의 전통을 소개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치제되었던 명산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동시에 국가를 수호하는 영험을 개인적인 차원으로 끌어들여 어떤 기원을 성취하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렇게 계룡산 산신제의 문헌자료와 구비전승이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그러나 문화축제로서 계룡산 산신제는 진행의 초점을 오직 문헌자료를 통한 역사성 확보에 두고 있다. 명성 있는 축제들이 지역의 인식에서 자리 잡고 있는, 그것이 비록 신화적인 왜곡일지라도,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생성․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은 문화축제로서 계룡산 산신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1. 머리말
2. 계룡산 산신제의 역사적 성격
1) 정기제(定期祭)
2) 임시제(臨時祭)
3. 계룡산 산신제의 구비적 성격
1) 설화와 계룡산 산신제의 연원
2) 무가와 계룡산 산신제의 영험
4. 계룡산 산신제의 지역축제 계승
5.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