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화의 향유는, 일상적인 규범과 실제 텍스트 향유의 괴리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다. 이 괴리 사이에서 성소화 향유자들이 느꼈을 정서를 재구할 필요가 있다. 텍스트 내에서 활자들이 야기하는 정서는, 이들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규범과 충돌하여 미묘하면서도 복잡한 반향을 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먼저 󰡔고금소총󰡕의 성소화, 특히 강간과 간통을 소재로 삼고 있는 성소화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거기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역할과, 재현의 차이에 주목한다. 성소화의 남성 인물들은 적극적 유혹자, 응시하는 주체로 기능하며, 성적 쾌감이 부재하는 것처럼 재현된다. 반면 여성들은 소극적으로 유혹당하는 자, 응시의 대상으로 기능하며, 성적 쾌감이 넘치는 것처럼 재현된다. 바로 이런 역할의 차이는 성소화 텍스트의 전략이 남성들의 웃음과 재미를 위하여 짜여진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성소화 텍스트 자체가 남성들의 흥미를 위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성소화를 여성 독자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은 분명 남성과 다른 감각으로 성소화 텍스트를 향유하였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유가적 전통 속에서 남성들은 성적 쾌락의 주체이자 쾌락의 관리자로 규정되었다. 반면 여성들에게 성적 쾌락은 금지된 것이었고 여성들은 쾌락의 대상일 뿐이었다. 여성과 남성을 다르게 규정짓는 유가의 성도덕으로 인해, 남성 독자와 여성 독자는 성소화가 만들어내는 간접적 성적 쾌락, 혹은 자극량을 처리하거나 향유하는 데 서로 다른 감각을 발전시켰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성소화가 읽힌 당대의 여러 콘텍스트를 참조하면서, 남성 독자와 여성 독자의 서로 다른 성적 정체성 형성 과정을 추정해 본다. 결론적으로, 성소화를 읽는 남성 독자들의 성적 정체성이 도덕적인 엄격함과 성적 민감함이라는 양항 사이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라면, 여성들의 성적 정체성은 순종과 저항이라는 상이한 양항의 대립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정체성을 구성하게 하는 현실의 맥락을 간통과 강간 관련 법 적용의 문제를 통해 재론하면서, 성적 정체성의 개인적 차이를 가늠한다.
1. 서론
2. 부재하는 남성의 쾌락, 넘치는 여성의 쾌락
3. 실제 독서과정에서 음란함의 향유와 성적 정체성
1) 자극량의 관리-도덕적 엄격함과 느슨함
2) 안락함의 추구-순종과 저항
4. 성소화의 현실감과 정체성의 편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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