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에 사화와 야사를 대중에게 구연하고 신문·잡지에 지속 적으로 게재했던 사람들을 일컬어 ‘야담가’라 했다. 이 논문은 야담가의 구연 활동을 살펴 근대 이야기문화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1927년 후반에 야담운동이 시작되면서 야담가 또한 등장했다. 야담가는 라디오에서 야 담을 구연해 청취자를 울리고 웃겼다. 라디오가 전통 이야기꾼의 활동 무대인 가내 사랑방 과 시정 공간을 차지하면서 야담가는 전통 이야기꾼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방송에서 인기 를 얻은 야담가는 야담대회로 진출했고, 야담대회장은 유료 입장한 청중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대표 야담가였던 김진구, 윤백남, 신정언은 자신만의 개성적이며 고정적인 구연방식을 선보였다. 김진구는 담뇌(談腦)라는 전략적 장치로 현장의 분위기를 조절했으며, 윤백남은 몸짓을 동반하여 변화의 묘미를 극대화했다. 신정언은 청중을 화중화(話中化)했다. 야담가는 사회 저명인사로 명성을 누리며 경제적으로 보상받았다. 야담가의 행보를 일각에서는 상업 적이고 과거 지향적이라며 비난했지만 대중이 야담을 공유하고 역사를 향유하게 했다는 점 에서 존재의의를 가졌다.
1. 머리말
2. 근대 이야기꾼 ‘야담가’의 등장과 라디오
3. 근대 이야기판 ‘야담대회’ 풍경
4. 야담가의 구연 방식
1) 김진구
2) 윤백남
3) 신정언
5. 야담가의 사회적 위상과 시대적 기능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