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조선후기에 발생한 구비문학 장르로서, 문자문화가 완전히 정착된 시대에 생 성된 구술 텍스트라는 특이성을 갖는다. 설화나 민요와 같은 역사 깊은 구비문학 장르들이 한반도에 문자가 도입되기 전 구술문화 속에서 생장한 후 나중에 문자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 것과 달리, 판소리는 애초에 문자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태어났다. 판소리는 분명히 글 이 아닌 말의 형태로 존재하는 문학이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문학이었지만, 그것의 질 료인 언어는 사실상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양쪽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따라서 판소리는 필연적으로 기존 구비문학 장르들과 구별되는 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겠는데, 본 논문에서 는 문자문화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이 문제를 고찰한다. 설화나 서사무가와 같은 기존 구비서사 장르들과 판소리를 비교할 때 극명한 차이가 나 타나는 부분은 바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방식이다. 본래 전통적인 구비서사 장르들 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개별적인 등장인물의 내면이 아니라, 주어진 역할에 합당 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외적변화이다. 따라서 설화나 서사무가와 같 은 기존 구비서사 장르들은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 너무 길게 말하지 않는다. 그와 대조적 으로 판소리는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 말하는 데 사설의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판소리에 서는 주어진 역할에 합당한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그로 인해 나타나는 외적변화보다, 오 히려 개별적인 등장인물의 내면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본 논문에서는 그 러한 판소리의 속성을 ‘내향성’이라 칭한다. 판소리는 아마도 소설의 영향을 받아 내향성을 갖게 되었으리라 추정된다. 등장인물의 내면을 비중 있게 다루는 소설의 글쓰기 방식에 익숙해진 판소리광대들이 그와 유사한 방 식의 말하기를 시도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판소리가 등장인물의 내면을 다루는 방식은, 소설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 판소리는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 말하는 자기만의 방식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기존 구비서사 장르들뿐만 아니라 소설과도 구별된다.
1. 서론 2. 조선후기의 책과 판소리 2.1. 판소리광대의 독서와 판소리 사설의 형성 2.2. 판소리계 소설의 유통과 판소리 사설의 전승 3. 판소리의 내향성: 개인의 내면에 대한 관심 4. 결론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