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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구술성과 기록성의 관계에 대한 영어권 학자들의 초기 탐구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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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학계에서는 구술성과 기록성의 관계에 대해서 오랜 세월동안 논의되어 왔으나 현 대 논의는 1960년대에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초기 미국?캐나다?영국 학자들의 대표적인 이론을 정리하여 이 분야에 기본이 되는 서양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자 한다. 구술성과 기록성의 관계에 대한 현대 연구의 출발점을 설정하자면 로드의 The Singer of Tales가 출판된 1960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밀만 패리의 연구에 이어 슬라브 구비 서사시를 연구하였으며 후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구전 정형어구 이론을 펼쳤다. 이어 서 많은 학자들이 구술성과 기록성에 대해 논했는데 본고에서는 캐나다 정보이론학자였던 맥루한, 미국 정보이론학자이자 예수회 신부였던 옹, 영국 구전학자였던 하베록, 영국 사회 인류학자인 구디, 영국 사회인류학자인 피네간의 이론을 검토하였다. 맥루한은 구술성에서 기록성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감각을 사용하는 비율이 청 각 위주에서 시각 위주로 변하였고 이 변화는 또한 인간의 사고방식에도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리고 맥루한의 이론의 특징 중에 하나는 ‘끊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매 체의 진화가 부드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가 이전의 매체를 몰살한다는 주 장이다. 옹도 매체의 진화가 사고방식에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었지만 그 진화는 ‘끊김’의 관 계라기 보다 새로운 매체가 이전의 매체를 ‘보강’하는 것이라 주장했는데, 실제 논의에서는 이전의 매체가 살아남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가 특히 후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개념은 문자가 없는 사회의 ‘일차적 구술성’과 문자가 있는 사회의 '이차적 구 술성'이다. 반면 하베록은 알파벳이 도입된 지 수 백 년 후인 플라톤의 <공화국>이 저술된 시기에 아직 구술성이 지배적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구술성과 기록성의 공존의 가능성을 열어주었 다. 맥루한이나 옹처럼 매체의 변화가 사고방식의 변화와 연결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 이 오래 걸린다고 주장했다. 한편, 구디는 구술성이 기억과 망각으로 사회 전통을 지켰다면 서 기록성은 객관성으로 인한 역사의식으로 특징지어지지만 기록적 사회에서 구술성이 지 속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매체로 인한 변화가 있다면 맥루한의 주장과 달리 그것이 자연스 럽고 유기적인 것이라고 했다. 피네

1. 들어가면서 2. 의사소통 기술의 충돌 : 맥루한 3. 의식을 변화시키는 매체 : 옹 4. 플라톤과 그리스의 구술성 : 하베록 5. 기록성의 결과 : 구디 6. 강한 결정주의에 반기를 들다 : 피네간 7. 나오면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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