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 부인 일화>는 변절한 신숙주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인의 자결기도를 통해 지 나간 ‘역사’에서 무엇이 잘못 됐는가를 얘기하고 있다. 계유정란(癸酉靖難)에서 단종복위 사 건에 이르기까지 피 비린내 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감히 ‘역사’에 대하여 거론할 수 없었던 시대에 신숙주 부인을 통해 그 ‘역사’의 횡포에 맞서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사건이 계유정란 당시에 있었던 일인지[<惺翁識小錄>의 기록], 단종 선위(禪位) 때에 일어나 미담으로 전하는 일인지[구비전승], 단종복위 사건의 실패로 사육신이 옥사를 치를 때 벌어진 일인지[『松窩雜說』ㆍ『燃藜室記述』의 기록]의 사실성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 려 시간을 다르게 설정하여 그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말함으로써 진실을 위장하는 수법을 취했다. <신숙주 부인 일화>에서 ‘이야기 만들기’를 통해 말하려고 한 것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 부당한 ‘역사’에 대해 자결을 시도하려하여 대의명분을 밝혔다는 점이다. 사육신 의 처형을 거론하여 신숙주와 같이 권력을 쫓는 사대부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신숙주 부인 일화>는 승자의 역사로 기록되어 감히 거론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시대에 짧 은 일화를 통해 거세된 역사에 대하여 변명하고 복원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일제 식민지시대를 맞아 그 이야기의 씨는 다시 발아했다. 근대작가들에 의해 소환되고 가공되어 박종화의 <목 매이는 여자>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미 그때 는 역사에 대한 금기가 풀려 구비전승의 ‘소멸되는 말’들이 아닌 기록된 작품들로 나타나게 되었다. 신숙주의 ‘변절’을 분명히 증거하기 위해 성삼문과의 친밀한 관계가 드러나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덟 명의 자식들이 등장했으며, 여기에 대응하는 윤부인의 태도도 실제와 다르게 강경하여 꾸짖는 것은 물론 침까지 뱉을 정도로 극단적이며 결국에는 목을 매거나 약을 먹고 자결함으로써 신숙주의 변절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실로 만들었다. 변절자가 득세하는 식민지 시대의 현실이 이야기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신숙주 부인 일 화>가 시대를 증거하는 불씨가 되고 당대를 성찰하는 이야기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
1. 문제의 제기
2. <신숙주 부인 일화>의 생성과 ‘역사’를 위한 변명
3. <신숙주 부인 일화>의 확산과 ‘역사’를 통한 성찰
3.1. <목 매이는 여자>와 ‘변절’에 맞서는 ‘力의 인간’
3.2. <申叔舟와 그 夫人>과 자결의 이유
3.3. <신숙주 부인 일화>의 역사 이야기로의 소환
3.4. <신숙주 부인 일화>의 근대적 변개와 이야기 만들기
4.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