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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高晶玉(1911-1968)의 구비문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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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서 구비문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일본 유학을 체험한 이들에 의해서이다. 예컨대 손진태가 가장 적절한 사례로 손진태가 일본 유학을 하게 된 것은 중요한 사례이다. 손진태가 일본 국학파의 거두인 유전국남(柳田國男)과 학문적 연분이 닿아 동양문고에 몸담고 민속학을 공부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손진태가 한국에 와서 갖가지 민속 조사와 구비설화, 무가를 채집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일제에 의해서 설치된 것이기는 해도, 1924년 경성제대 예과, 1926년에 법문학부와 의학부 등이 설립되어 국내에서 동일한 학문을 공부하며 학풍을 진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결국 일본식민지 지배라는 동일한 조건이기는 하지만, 경성제대 법문학부 조선어문학과 출신의 우수한 인재들이 학계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우리 구비문학 연구나 한국학 연구의 중요한 디딤돌이 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1931년에 김태준, 김재철, 조윤제, 이희승, 이재욱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조선어문학회’는 서구의 실증주의 연구방법에 기초한 국문학 연구의 효시가 된다. 따라서 경성제대 출신의 초창기 국문학자에 대한 검토는 매우 소중한 과제로 부각된다.

1. 머리말

2. 고정옥 저작의 비판적 검토

3. 고정옥 민요 연구의 의의와 한계

4.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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