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저널
淸代이래 國學은 樸學이란 이름으로 5․4 신문화 운동기 이전까지 주로 실증적 학술 연구 방법으로서 고증학, 훈고학 등 전통적인 治學 방식이었다. 그 당시 일부 문학사의 경우에도, 國學史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양자의 개념 차이가 없었다. 1905년, 15세의 나이였던 胡適은 엄복의 《天然論》을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은 양계초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학문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됨을 역설하고 있다. 胡適은 양계초의 《中國學術思想變遷的大勢》라는 책을 읽고 ‘新世界’에 눈을 떴음을 고백하면서 훗날 《中國哲學史》의 씨앗이 싹텄음을 고백하듯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학술사상 변천의 대세〉는 나에게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나로 하여금 《四書》《五經》이외에도 중국에 학술사상이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는 첫 번째로 역사적 안목으로 중국의 옛 학술사상을 정리하는 것이며 첫 번째로 우리들에게 하나의 ‘학술사’의 견해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러한 야심은 내가 나중에 《中國哲學史》를 쓰는 씨앗이 되었
1. 緖論
2. 國學危機와 ‘整理國故’ 개념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문제
3. 科學的 國學의 定立과 ‘整理國故’의 方向性 정립
4. 漢學的 傳統의 繼承과 ‘整理國故’의 體系化 戰略
5. 結論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