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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녹파잡기(綠波雜記)》를 통해본 강남 서적의 유입과 그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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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중국 북방과 국경이 닿아 있는데다 유교의 영향으로 황하 북쪽의 문화부터 받아들였지만, 고려가 남송(南宋)과 교역하면서 자연히 강남 문화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조선시대 시인들도 악부체 시를 지을 때에는 의레 강남지역의 민속을 노래하였다. 손곡 이달을 비롯한 삼당파(三唐派) 시인,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 등의 시에 강남이 많이 나타난다. 섭몽득(葉夢得)은 《석림연어(石林燕語)》에서 “천하에 인쇄된 책으로는 항주(杭州)의 것을 최고로 친다[天下印書, 以杭州爲上]”라고 했으며, 호응린(胡應麟)은 《소실산방필총(少室山房筆叢)》에서 “책을 간행하는 지역이 세 군데 있는데, 오(吳)·월(越)·민(閩)이다. 정밀한 것으로는 오본(吳本)이 최고요, 많기로는 민본(閩本)이 최고이며, 월본(越本)은 모두 그 다음이다”라고 하였다. 명청(明淸) 교체기 출판의 중심지였던 강남의 서적이 조선에 어떻게 들어와 영향을 끼쳤는지, 한재락이 지은 《녹파잡기》를 예로 들어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머리말

2. 패관소품체를 읽은 한재락의 가학(家學)

3. 평양 기생의 이야기를 기록한 《녹파잡기》

4. 유리창과 강남 서적

5. 절강서목(浙江書目)의 유포

6. 《판교잡기》의 조선 유입

7. 맺음말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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