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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실제와 허구가 병존한 嘔血臺 고사의 탄생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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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 지식층 사이에 널리 전해오는 嘔血臺 고사가 발생한 실체와 과정을 고찰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구혈대 고사는 명과 후금(훗날 청)이 寧遠(현 요동 興城)에서 격돌한 전쟁, 소 위 寧遠大捷을 배경으로 삼았다. 고사 속에서 후금 누르하치(奴爾哈赤)가 대군을 이끌고 영원성(현 흥성)을 공략했다가, 명 袁崇煥의 지략과 용맹에 막혀 대패를 당하자 울분에 쌓여 피를 토해내었고, 나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이때 조선 사절 의 일원으로 온 역관 韓瑗이 전쟁 상황을 직접 목격하는 증인으로 등장했다. 구혈대 고사는 李星齡의 ≪春坡堂日月錄≫에 처음 기술된 이래 조선 지식층 사이에 널리 알려졌고, 특히 사행에 나선 조선 사절은 노정에 소재한 영원을 지 나가며 구혈대 고사가 발생한 장소를 확인하곤 했다. 영원성의 동북쪽에 자리한 首山에 명 정통 연간에 세워진 봉화대가 있고,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영원성이 한 눈에 들어온다. 후대에 들어가서 구혈대 고사는 주인공이 누르하치에서 홍타 이지로 바뀌는 등 여러 형태로 변형되며 계속 발전해 나갔다. 조선 지식층이 구혈대 고사를 들먹이는 것은 굴욕적 역사를 안긴 청나라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고 명 원숭환의 승리를 통해 자신의 승리인양 일종의 대리 만족에서 나왔다. 구혈대 고사에는 실제와 허구가 병존한다. 고사에 나타난 전쟁 모습은 역사적 실체와 가깝지만, 이때 조선 사절과 역관이 출현했다는 것은 허 구이다. 원형 고사 또는 변형 고사에서 언급된 실제 역사, 즉 1626년(천계 6; 천명 11)의 영원대첩 또는 1627년(천계 7; 천총 1)의 영금대첩 때는 연행 노정 상 조선 사절이 영원과 금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1629년(인조 7)에 진하변무 사 李? 일행이 다시 영원을 들렀고, 이때 사절의 일원인 역관 한원이 원숭환과 몇 차례 만났는데, 한 번은 금주로 가서 원숭환과 함께 군사 훈련과 시설물을 둘러보았다. 이때 한원이 목격한 상황이 조선 지식층으로 사이에 전해졌고, 나중 에 후대 사람에 의해 확대 생산하여 구혈대 고사가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보인 다.

1. 서론

2. 嘔血臺고사의 출현과 변이 양상

3. 嘔血臺고사의 배경지 首山봉화대

4. 진하변무사 李?의 사행 활동

5. 상통사 韓瑗과 袁崇煥의 만남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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