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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魯迅과 木刻 運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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魯迅은 1936년 10월 17일 그의 충실한 이해자였던 內山 完造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의 魯迅에 대해서 內山 完造氏는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오늘 밤 죽을지, 내일 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죽기 바로 전 날의 오전까지 죽 版畵紙를 살펴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주의 깊고 신중해서 끝까지 철저하게 자기의 손으로 하지 않으면 승낙하지를 않았다. 자기가 직접하면서 몇 천매나 되는 가운데서 주름이 있는 종이는 뽑아 내서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翌日인 16일 미명에 지병이 재발하여 천식이 그치지 않은채 계속 되다가, 19일 새벽에 그가 가르쳐온 미술 청년들에둘러 싸인 채로 국제도시 上海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실로 그 55년 간의 생애는 문예 활동에 근간을 두면서 관료, 교육자, 평론가로서 근대화에 고뇌하는 중국의 과제를 한 몸으로 감당한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20代를 유학생으로서 7년 동안 日本에서 보낸 경험이 있는 魯迅은 日本人과의 폭 넓은 교류를 통해서 여러 나라의 문학과 예술의 소개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기울였는데 그 과정의 일환으로써 미술의 보급 활동에도 온 정열을 쏟았다. 특히, 1920년대 후반에 새로운 木版畵 활동에 깊게 관여하게 되었는데 그에 동반하여 木版畵 기술의 소개와 전수에 日本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예로서 魯迅은 上海로 옮겨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永瀨 義郞의 『版畵를 만드는 사람에게』등의 기법서를 입수 하여 깊이 빠져 들기도 하고, 또 그가 직접적으로 版畵家 육성 활동에 참가하는 계기가 되었던 內山 完造의 實弟인 內山 嘉吉을 강사로 초빙하여 1932년에 개최 하였던〈夏期木刻 講習會〉등을 들수가 있다.

一. 머리말

二. 魯迅의 美術論

三. 魯迅의 版畵論

四. 木刻 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 후 日本에 미친 영향

五. 맺음말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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