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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도교 경전 『옥추경』의 민간전승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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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무속 경전으로 쓰이고 있는 옥추경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경전이다. 명나라 《정통도장》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옥추경은 조선시대에 소격서 관리 채용을 위한 과목 중의 하나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는 무속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속에서도 그 의의와 근거를 유지하면서 그 뜻을 새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거치면서 변화되어 한글 음 등을 붙여서 그 의미보다는 암기에 중점을 두는 주문이 되어 버렸다. 옥추경이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 계기에 가장 중심은 옥추경 자체의 혼란성에 있다. 옥추경에 대한 부족한 자료뿐만 아니라 옥추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전승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옥추경이 현재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영험성에 있을 것이다.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설이 라고 전해지는 옥추경은 조선시대 국가제사에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재액구복의 역할을 하여왔으며, 소격서가 혁파 된이후에는 민간으로 숨어들어 그 역할을 계속하여 왔다. 이와 같은 옥추경의 혼란을 초래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저자에 있다. 옥추경의 저자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 근거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저자를 추론하려는 시도는 구중회의 『옥추경연구』에서 있었지만 <옥추경집주>의 발문의 해석 과정과 저자 추론 과정에서 필자와 많은 견해차이가 있어서 다른 글들과 본인의 해석에 중점을 두어 저자 관련 부분을 다루었다. 옥추경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국가적, 민간적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국가적인 측면에서 보면 먼저 기우제를 들 수 있다. 조선시대 기우제는 맹인들을 통해서 드려진 경우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자주 확인된다. 이는 맹인들이 독자적인 사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우제의 결과를 왕의 정성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맹인들이 현재까지도 독경업에서 옥추경을 주요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옥추경과 기우제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옥추경은 그 경전 자체로 쓰이기도 하였지만 옥추제식이나 옥추단 등의 다른 형태로도 그 위엄을 발휘하였다. 특히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 사도세자가 옥추경을 읽고 정신을 잃은 이야기, 옥추단을 무서워한 이야기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언급된 옥추단을 실제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게

I. 머리말

II. 옥추경의 의미

III. 도교 경전으로서의 옥추경

1. 옥추경에 대한 혼란들

2. 『옥추경연구』에서의 저자 논의

3. 한국 옥추경의 판본들

IV. 옥추경의 국가적 의미

1.국가 기우제와 옥추경

2. 옥추제식

3. 옥추단

V. 옥추경의 민간적 의의

1. 복을 기원하는 책

2. 수련 혹은 권선하는 책

3. 고대 소설과 방술서

4. 삭사, 즉 ‘귀신을 녹이는 책’

5. 또 다른 여러 가지 의의들

V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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