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라는 용어처럼 그 외연(外延)이 일정치 않은 용어도 드물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한자라고 부르는 대상은 중국에서 쓰인 적이 있는 모든 글자들을 포함하고, 확장해서는 한국과 일본에서 만들어 쓴 것도 그 안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 중에는 한두 번 쓰이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글자들도 포함되어있고 약자(略字)나 이자(異字)로만 존재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갑골문(甲骨文), 금석문(金石文), 전서(篆書)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사뭇 다른 글자체도 포함된다. 그 중에는 각 글자들 간의 연속성이 확실한 경우도 있지만, 갑골문처럼 시간적으로 뚝 떨어져 있어 연속성을 공유하는 문자로 보기 힘든 것도 있다. 물론 갑골문은 한자의 조상이라 해야 하겠지만, 한 가지 정체성에 속하는 글자체계인가 하는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한자는 모두 몇 개인가?” 하는 질 문은 정확한 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이고, 한자는 그 원소의 제한이 불확실한 열린 집합이다. 그런가 하면 한자라는 용어는 “이건 한자처럼 생겼지만 한자가 아니다”라는 판단이 가능할 만큼 그 대상의 정체성이 직관적으로 통용되는 닫힌 집합이기도 하다.
I. 시작하며
II. 문자와 기호
III. 한자와 문자
IV. 소리와 한자
V. 한자 기호주의 또는 낭만주의
VI. 문자 낭만주의와 기호학적 사건
VII. 끝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