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으로 인천해안교두보를 확보한 미국 해병대 제1사단은 9월 16일부터 한강으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9월 18일부터 후속부대인 미국 육군 제7사단과 한국 육군 제17연대가 상륙하여 서울 수복과 적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였고, 9월 27일 한국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한 후 소탕전을 전개하여 9월 28일 수도 서울은 90일 만에 수복되었고, 인천상륙작전은 한반도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역사적인 적전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전쟁사(戰爭史)적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쟁의 주도권 전환으로서 대우회 기동전략을 통한 기습으로 적의 병참선을 차단, 적에게 물리적·심리적 교란효과를 달성하여 적의 전투의지를 약화시킴으로써 공세 이전의 계기가 되었다. 둘째, 한국군과 유엔군의 인적 · 물적 · 시간적 손실을 최소화 시켰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지상반격작전을 감행했을 때 북한군은 금강선, 천안-장호원선, 한강선, 38도선의 최소한 5개 지연진지에서 축차적으로 조직적인 전투를 수행할 수 있게 되어 약 10만명 이상의 한국군과 유엔군의 손실과 수많은 민간인의 학살을 예상할 수 있었다. 셋째, 전략적 대포위기동의 대표적 전례가 되었다는 것과 이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지휘관의 전략적 식견과 미 해군 및 해병대의 전문화된 상륙전 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천상률작전은 작전 자체의 성과보다는 이후의 피 · 아 작전에 미친 영향에서 더욱 더 전쟁사적인 의의를 갖는 작전이었다. 기습효과 달성을 통한 적의 전투의지에 대한 파쇄와 상대국 전쟁지도부의 성향, 그리고 언제든지 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해 · 공군 세력이 불균형, 전장의 지리적 특성이 상호 결합되어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전은 6 · 25전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실로 다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38도선 이남지역에서의 전투에서 공세이전의 계기를 조성하여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킨 점과 북한군의 전투력 와해로 인한 전쟁 주체로부터 이탈, 유엔군의 전쟁 목적 변경, 한국군의 전투사기 고양과 지형목표의 집착, 중공군의 개입시 추가적인 상륙작전 위협에 대한 대비책으로 각 공세시마다 북한지역의 동 · 서해안에 대상륙 방어부대를 분산 배비하지 않을 수 없게 함으로써 정면전선으로의 병력의 집중현상을 막을 수 있었던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인천상륙작전의 배경과 준비
Ⅲ. 인천상륙작전의 실시와 서울탈환
Ⅳ. 인천상륙작전의 북진 과 공훈
Ⅴ. 결론
참고자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