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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국가』에서 철학자가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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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국가』에서 철학자가 이상 국가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철학자는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고 이러한 앎을 토대로 정의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국가』의 논의 중에서는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정의로울 수가 없다는 함축을 갖는 것으로 보이는 구절들이 있다. 이러한 함축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며, 필자는 본 논문을 통해서 그러한 생각이 플라톤의 진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보인다. 먼저, 『국가』 9권에 등장하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 돈을 사랑하는 사람의 구별을 바이올린 제작술의 유비를 통해서 설명하고, 각각의 경우에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스스로 성취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과 그런 능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의 도 차원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이를 통해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앎을 스스로 성취해 낼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지혜를 사랑하고 덕과 정의를 그 자체로 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 그러고 나서, 『국가』 2-4권에서의 수호통치자에 대한 논의와 『국가』 5-7권에서의 철학자-통치자에 대한 논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수호통치자의 조건과 철학자-통치자의 조건 사이에 논리적 차이가 있음을 밝힌다. 이 논리적 차이를 바탕으로, 『국가』 4권에 나오는 정의로운 사람이 반드시 좋음의 이데아에 대한 앎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음에 대한 모종의 참된 믿음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고 논증한다. 이때 참된 믿음에 기초해서 정의로운 사람은 철학자가 아니면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

Ⅰ. 들어가는 말

Ⅱ. 차선의 이상

Ⅲ. 『국가』 2-4권에서 수호통치자의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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