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학의 극복을 주창하면서 등장한 양명학은 그 역동성과 간이성으로 인 해 많은 성과를 올렸지만, 동시에 많은 문제점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양명 재세시 부터 이미 그의 후학들은 그 해결을 위한 시도를 행하여 왔는데, 그들은 양명의 제 개념을 인정한 위에서 양명의 ‘공부론’을 어떻게 해석하여 본체와 공부의 정합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명말청초에 이르면, 이들과 달리 양명과는 전혀 다른 개념 분석에 의해 양 명의 문제점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행해진다. 그 작업은 주로 ‘심지소발心之所發’ 로서의 ‘의意’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 주장의 치밀함이 나 스케일의 웅대함으로 볼 때 그 대표자는 유종주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유종주 이전에 이미 왕일암이 유종주 못지않은 치밀함으로 ‘의’ 개념에 기반한 새로운 ‘성 의설’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본고는 이러한 시도가 중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나카에 토쥬가 바로 그 사람 이다. 본고는 왕일암, 유종주, 나카에 토쥬의 성의설을 분석, 비교함에 의해, 양명학은 과 연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그것을 왜 ‘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 해 극복하고자 했는가, 그들의 동이점은 어디에 있고, 얼마나 합리적인가에 대하여 고찰한다. 나아가 나카에 토쥬의 ‘성의설’을 통해 일본 양명학의 특징은 무엇이고, 왜 그런 특징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당시 일본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연계지 어 살펴보는 작업도 진행한다.
I. 서론
Ⅱ. 본론
Ⅲ.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