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제명은 다른 제1세대 양악 전공자들이 공부한 전공과는 또 다른 활동을 했다. 그것은 성악가로서의 활동을 비롯하여 작곡가ㆍ음악교육가 ㆍ음악행정가로서의 활동이다. 성악가로서의 활동은 1929년 제1회 독창회를 대구에서 하였으며, 유성기음반에 많은 곡을 취입하였다. 작곡활동에 있어서는 1933년 홍난파와 함께 한국 최초의 작곡발표회를 하였다. 더구나 가극 “춘향전”과 “왕자호동”을 작곡했으며, 두 권의 작곡집을 낸 바 있다. 음악교육가적인 면에서는 연세대학교에 재직한 것을 비롯하여 해방 후 경성음악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후에 서울대학교 음대 학장)직을 맡은 바 있는데, 여기에서 현제명은 수많은 음악활동을 하여 우리나라 양악의 부흥을 꾀하였다. 그리고 음악행정가로서는 조선음악가 협회(해방 전)ㆍ국민음악연구회ㆍ 조선음악협회ㆍ경성음악연구원ㆍ고려교향악단ㆍ한국음악가협회 등에서의 활동을 들 수 있다. 이렇듯, 여러 갈래에서 수많은 음악활동을 전개한 현제명에 대하여 아직까지 자세하게 논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현제명의 생애와 함께 음악적인 활동을 통해 그가 언제 무엇을 했는가를 객관적인 관점에서 사실대로 밝혀보았다. 여기에서는 한 가지 시각에서만 조명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의 음악활동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밝힘으로써 앞으로 현제명에 대하여 연구하려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한국양악사에서 전개한 음악활동의 실적으로 보와 그의 위치를 아무도 과소평가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언제나 단체의 대표적인 위치에서 활동하였고, 잘 알려진 노래를 많이 남겼으며, 연희전문학교에서의 음악적 부흥을 꾀함과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실질적인 창설자의 위치에서 양악 관련 대학음악교육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현제명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총독 아베(阿部達一)가 회장으로 되어 있던 조선음악 협회의 이사직을 맡았고 일본 관련 어용악단으로 평가되는 경성후생실내악단의 대표가 바로 현제명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음악학계에서 아직까지 현제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었음은 사실이다. 따라서 현제명에 대하여 앞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연구되어야 마땅할 것으로 본다. 한국 양악의 역사
1. 머리말: 한국양악계의 선구자
2. 현제명의 생애와 음악활동
3. 맺음말: 현제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
〈부록〉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