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朴泰俊, 1900-1986)은 대구출신의 서양음악가 제1세대 중에서 많은 음악적 업적을 남긴 분이다. 특히 계성학교에 세 번동안 12년 재직 하면서 많은 음악활동을 하였다. 작곡활동과 합창, 악대의 활동, 그리고 대구성가협회를 조직하여 행한 합창활동 등 대구지역에서 실제적으로 음악활동을 한 선구자적인 음악가였다. 박태준은 1938년 대구에서 최초 의 일반합창단을 조직하고 연주회를 개최하여 대구지역 합창활동의 뿌리를 내리게 했다. 나아가 해방 후 서울에서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을 조직하여 활동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으므로, 종교적 합장활동에 있어 우리나라에서 그 시초를 이룬 분이기도 하다. 박태준이 대구에서 태어났음은 대구의 자랑이 아닐 수 없으며, 특히 일생동안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대구에서 일찍이 굳어졌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따라서 박태준의 일생을 더듬어 보는 일은 곧 문화도시라 불려지는 대구의 음악문화적인 면을 나타내 주는 일이라 하겠다. 본고에서는 박태준의 발자취를 추적하여 그 업적을 밝히고 후학들에게 그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데 의의가 있다. 이러한 일은 박태준 개인에게만 국한된다기 보다는 그의 음악활동으로 인하여 대구지역 서양 음악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음을 강조함에 그 숨은 뜻이 있다. 박태준은 생애 150여곡을 작곡했는데, 동요곡을 비롯하여 가곡류ㆍ교가 등 모두 성악곡을 작곡했었다. 그는 대구 제일교회에서와 계성중학교 시절부터 오르간으로 찬송가 습득 및 제일교회합창단원으로 합창분야에 관계하게 되었음을 본고에서 확인하였다. 이후 숭실대학을 졸업하고 마산 장신중학교에 근무하면서부터 창작활동을 실제적으로 하게 되고 곧 계성학교로 부임해서 학생들의 합창활동은 물론이거니와 악대까지 맡아 지도를 하였다. 그러던 중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하여 음악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귀국 후 숭실전문학교와 계성학교에 근무하면서 창작 및 합창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렇듯, 박태준은 우리나라 합창운동의 선구자이며, 수많은 합창활동을 통하여 우리나라 합창분야를 개척했던 것이다. 특히 합창분야 중 종교적인 성격의 합창단을 운영하면서 종교음악에 지대한 공헌을 하신 분이다. 동요를 작곡하여 자라나는 어린이의 꿈을 키웠음은 물론이거니와 가곡 작곡으로 인하여 일반인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
1. 머리말: 한국합창활동의 밑거름
2. 박태준의 생애와 음악활동
3. 맺음말: 한국합창계의 원동력 역할
〈부록〉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