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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김문보, 한국인 최초의 바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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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보(金文輔, 1900년생)는 대구 출신의 성악가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바리톤이다. 또한 1926년 8월 30일 대구지역 최초의 독창회를 개최한 성악가이기도 하다. 일본에 유학한 김문보는 한국에서 성악활동을 선구자적으로 전개하여 성악분야에 기여했다. 한편 1928년 7월 14일 대구소학교강당에서 개최되었던 권태호(權泰浩, 1903-1972)의 독창회가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에 해당되므로, 우리나라 성악사는 영남지역 출신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문보는 1900년 2월 29일 대구시 중구 남산동 23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덕경(金德卿, 1868-1950)과 어머니 박씨(朴氏)부인 사이 3남1녀 중 2남으로 태어난 김문보는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부친은 초창기 대구제일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종교적 환경으로 인하여 김문보는 후에 성악가가 될 수 있었다. 아울러 제일교회에 다니면서 오르간을 습득 했던 것이고, 선교사에게 찬송가를 비롯하여 서양노래를 배웠던 것이다. 더욱 오르간 등 서양악기를 구입하여 다루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문학평론가이며 친일파로 알려진 김문집(金文輯)은 그의 동생인데, 이들은 대구소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들만 입학할 수 있었던 대구중학교에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제일교회에 다닌 신자들은 대부분 대남 (大南)국민학교와 계성(啓聖)중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이들이 대구소학교와 대구중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영향력 때문으로 보는 견해이다. 1919년 직후부터 일본과 조선의 융화를 위해서는 조선사람에게도 문화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는데, 이에 따라 조선총독부(朝勳總督府)는 우수한 한국학생을 선발해서 일본에 유학을 시켰던 상황이었다. 후미히로 요시노(文博吉野)는 일선융화회(日鮮融和會)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한국젊은이들을 일본에 유학시켜 일본문화를 배우게 했다. 여기에 선발되어 우에노〈上野〉음악학교(현 동경음악학교)에 들어간 사람이 바로 김문보이다. 이후 김문보는 일본에서 오페라 활동을 하던 중, 우에노음악학교 후배 요시사와 나오코(吉澤直子)와 1926년 동경에서 결혼하였다. 결혼직후 1926년 8월 30일 대구제일소학교강당에서 개최된 독창회의 주인공이 바로 김문보이다. 이 음악회는 대구지역 최초의 독창회이며, 아울러 우리나라 최초의 바리톤 독창회이다. 더욱 대구로 오기전 2개월동안 일본

1. 머리말: 한국 최초의 바리톤

2. 김문보의 생애 및 발자취

3. 김문보의 성악활동

4. 맺음말: 한국성악사의 자리매김

〈부록〉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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