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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한국의 피아노 유입과정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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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서양음악은1) 1827년 천주교인 이공사가(1837-1868) 집안이 대구로 이주하면서 비롯되었다. 이후 1897년에 야소교회당(종로 제일교 회)이 설립되면서 찬송가 보급을 통한 서양음악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 러한 과정에서 사이드보텀(R.H. Sidebotham, 1874-1908) 부부가 미국 북장 로교 해외선교사로 대구지역에 파견되었다. 그는 1899년 11월 23일부터 대구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는데, 이듬해 가족의 이삿짐 중 피아노가 1900년 3월 26일에 화원 사문진선착장(현 화원유원지)에 도착하였다. 이 피아노는 3일걸려 중구 종로에 위치한 자신의 집까지 옮겨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부산에서 대구로 오려면 두 가지 방법만 있었다. 하나는 육 로이고, 다른 하나는 수로이다. 육로는 부산에서 삼량진-밀양을 지나 청 도를 거쳐 팔조령으로 연결되는 길이며, 수로는 부산에서 뱃길로 출발하 여 낙동강을 거슬러 사문진선착장으로 들어오는 길이다. 때문에 무거운 짐들은 부산에서 낙동강을 타고 사문나루에서 내려야만 가능했었다. 이 렇게 수로를 통하여 사이드보텀 부부의 피아노가 대구에 유입되었다. 무 거운 피아노를 부산에서 나귀 및 마차로 육로를 통해 옮길 수 없어 뱃길 을 이용했던 것이다. 이 피아노의 실제적 주인은 사이드보텀의 아내 에피 앨든 브라이스 (Effie Alden Bryce, 1876-1942)이다. 에피는 이미 처녀 때부터 미국 미시건 주 래피어 제1장로교회에 다니면서 피아노 및 오르간 연주를 맡았으며, 아울러 동네에서 음악교실을 운영하면서 생활하였다. 그녀는 1907년 안 식년을 맞아 미국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교회에서 피아노 및 오르간 의 반주자와 동네에서 음악교실을 운영하며 생활하였다. 더욱 자신의 딸 에게도 피아노를 가르쳐 그의 딸이 나중에 유명한 전문음악가들의 피아 노반주를 맡기도 하였다. 한편 1991년 필자에 의해 기존 연구된 내용은 대구지역에 에디드 파 커(Edith Parker Johnson, 1871년생)의 피아노가 1901년 5월에 유입되었고, 이후 이 피아노가 대구 신명여학교에 기증됨으로써 음악교육 및 종교활 동에 사용됐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번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내용 은 기존 연구보다 1년여 빠른 1900년 3월 26일에 사이드보텀의 아내 에 피의 피아노가 대구에 유입됐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앞으로 최초라는 기 존내용이 수정되어야 마땅할 것이며, 기존 연구

1. 머리말:최초의 피아노 유입

2. 기존 연구 검토

2) 김영환이 밝힌 기존 내용

3. 사보담 및 에피의 피아노

4. 맺는말:최초의 피아노 이해

<부록 1-1> 사보담의 1899년 12월 29일자 기록내용

<부록 1-2> 사보담의 1900년 3월 26-28일자 편지내용

<부록 2-1> 사보담의 1899년 12월 29일자 기록내용 번역

<부록 2-2> 사보담의 1900년 3월 26-28일자 편지내용 번역

<부록 3-1> 사보담의 1899년 12월 29일자 원문(6면)

<부록 3-2> 사보담의 1900년 3월 26-28일자 원문(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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