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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하서 김인후의 도학과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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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김인후가 살았던 16세기는 조선초기 사화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이어서 도학정치를 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였다. 그는 개인적으 로 인종이 세자로 있을 때 교육을 맡아 인연을 맺었으나 인종이 급서하 는 바람에 심적 고통을 겪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그후의 정치적 상황도 여전히 척족정치로 인하여 당쟁이 이어져 도학정치에 대한 희망 을 포기하고 낙향하였다. 그는 타고난 자질이 문학에 뛰어나 많은 시문 을 남겼으나, 성리학에 관한 것은 거의 없고, 단편적인 것 뿐이다. 그러 나 당시 호남지역에서 고봉 기대승, 일재 이항 등과 학문적 교류를 하 면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수학 초기부터 소학을 중요 시하여 조선초기 도학 개창기의 정암 조광조 등 여러 선비들의 소학 에 의한 일상수양의 중시 학풍을 계승하였다. 그 외 주자학이나 성리학 에 대한 일반 유학자로서의 관심을 살필 수 있는 자료가 약간 있다. 대 표적인 것이 일재 이항과의 태극·음양에 대해 논의한 것과 「천명도」의 작성이다. 「천명도」는 성리학의 천인합일을 나타내는 도로서 매우 중요 한 것인데, 처음 도를 작성한 추만 정지운과 이를 수정한 퇴계 이황의 그것과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는 기묘명현의 도학정치를 계승하 여 당대에 요순정치를 실현하려는 큰 포부를 가졌으나 시대적 불운을 만나 정치적으로는 좌절된 선비였으나, 일반 유학자로서 또 자연시인으 로서 당시 호남지방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선비였다.

1. 서 언

2. 하서의 도학과 도학정신

3. 하서의 성리학과 천명도

4. 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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