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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山鹿素行·荻生徂徠·乳井貢의 士道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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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란 조선왕조시대에 과거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어서는 왕을 섬기 며 백성을 위한 정치에 매진하고, 물러나서는 재야에서 학문을 가르쳐 후진을 길러 사회에 유교 이념을 구현하고자 했던 계층을 가리킨다. 선 비는 국왕에게 충성을 다하는데, 그 이상으로 보편적인 ‘理’를 중시하여 왕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언할 것을 책무로 삼고,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주저 없이 관직을 그만두었다. 왕과 선비와의 관계는 ‘義理’로 연결되어 선비는 왕에게 오로지 종속되는 자는 아니었다. 이 점은 일본 의 사무라이(侍) 사회에서 양성되어 온 主從關係와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하가쿠레(葉隠)로 유명한 야마모토 조초(山本常朝)는 主君의 잘 못을 간하여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주군을 떠나지 않고 잘못을 포함해 주군에게 더욱 봉공하라고 설파할 것이다. 에도(江戸) 시대에는 주군과 의 운명공동체적인 주종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하가쿠레적인 무사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쿠가와(德川) 시대의 ‘평온한 세상(静謐の世)’에 서 무사의 존재 이유를 유교 이념으로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이들도 있었다. 사무라이로서 살 것인가, 君子로서 살 것인가, 또는 양자를 통 합한 삶의 방식을 취할 것인가, 이렇게 에도 시대 무사들의 아이덴티티 (Identity)는 흔들리고 있었다. 본고에서는 유자와 무사 사이의 儒者와 武士 사이의 이중의 아이덴티 티로 살았을 도쿠가와 시대 일본의 세 무사(山鹿素行、荻生徂徠、乳井 貢)를 고찰의 대상으로 하였다.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사회와 조선사회 는 정치체제도 사회구조도 자연히 다른 것으로, 선비와 무사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선비와 무사는 모두 통치자 계급으 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스스로에게 부과하여 사 회를 주도하고자 했던 점에서는 공통된 면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 본 무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 모습이 선비정신의 연구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뉴이 미쓰기(乳井貢)는 히로사키 번(弘前藩)의 간죠부교(勘定奉行)로 서 당시의 재정개혁을 단행했던 실무가임과 동시에, 야마가 소코와 오 규 소라이에게 사숙한 유자이기도 하였다. 도쿠가와의 태평 시대에 소 코와 소라이는 무사의 이념을 어떻게 재정립하

1. 서론

2. 儒敎와 德川武家社會

3. 山鹿素行

4. 荻生徂徠

5. 乳井貢

6. 결론을 대신하여 -‘公’을 담당하는 ‘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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