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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退溪集』의 編刊 經緯와 그 體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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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集』은 退溪가 서거한 한 해 뒤인 辛未年(1571년)에 遺文을 輯錄하기 시작하여 庚子年(1600년)에 처음 간행되기까지 무려 30 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輯錄本인 初本 『退陶先生集』에서 문집 草 稿本인 中本 『退溪先生集』 원 텍스트, 中本 『退溪先生集』 원 텍스 트에서 中本 『退溪先生集』 重校本, 中本 『退溪先生集』 重校本에서 문집 中草本, 문집 中草本에서 문집 定稿本, 곧 定本 『退溪先生文 集』이 만들어지는 참으로 복잡한 편집 과정을 거쳐 간행되었다. 詩에 있어서는 退溪가 직접 刪節까지해둔 手錄本이 존재했기 때문 에, 그것에 의거해서 문집을 內集·別集·外集으로 나누어 저작 순서 대로 편집하는 방침이 그 편찬 초기부터 이미 정해졌다. 그리고 문집의 체재와 편차는 『朱子大全』의 것을 준용하되, 書簡만은 『朱 子大全』의 內容中心의 분류 편집 방식을 따르지 않고, 그것에서 한발 진전된 人物中心의 분류 편집 방식, 다시 말하면 書簡의 與 答人物을 그 內容도 함께 고려해서 時(時賢)·知(知舊)·門(門人)·家 (家人)의 네 부류로 나누어 편집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러한 편 집 방식은 重校작업을 주관한 鶴峯金誠一과 西厓柳成龍이 처음 적용하였고, 최종 편집자였던 月川趙穆도 그대로 따랐다. 그 점이 『退溪集』이 『朱子大全』과 가장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고, 『退溪集』 간행 이후 그 체재와 편차를 따른 우리나라 고문집의 주요한 특징 이기도 하다. 이처럼 書簡에서 진전된 편집 방식을 마련하고서도, 『退溪集』은 정작 西厓柳成龍이 草本을 가지고 판각했다고 비판할 만큼 그 초간본인 庚子本은 편집상 많은 문제를 안고 간행되었다. 전란을 겪은 뒤라서 출간을 서둘렀다면, 수정 보각 과정에 의당 바로잡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여 추후의 改刊과정 에도 여전히 수정되지 못했고, 기존의 체재와 편차를 고수하려는 강한 관성 때문에 그대로 남겨진 채 계속 유통되었다.

Ⅰ. 序論

Ⅱ. 『退溪集』의 編刊 經緯

Ⅲ. 庚子本의 體裁와 그 편집상 문제점

Ⅳ. 結論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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