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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퇴계의 중국문인 차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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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도학자이기도 하지만 평 생 동안 2000수가 넘는 방대한 양의 시를 남긴 걸출한 시인이기도 하다. 이 2000수가 넘는 시 가운데는 남들이 지은 시의 각운자를 써서 짓거나 화답하여 지은 시가 많이 보인다. 이를 통틀어 화차 운시(和次韻詩)라고 하는데 화답하는 시는 통상적으로 같은 각운 자를 써서 짓는다. 한편 퇴계는 중국문인들의 시에도 같은 각운자를 써서 지은 시 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과는 나서 산 곳과 활동을 한 연대가 달라서 직접적으로 화답한 시는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퇴계가 중국문인들의 시에서 같은 운자를 써서 지은 차운시만 모아서 자 료로 엮어보았다. 퇴계가 차운한 시인으로서 가장 이른 시기의 사람은 진나라의 도연명(365?~427)이다. 그리고 가장 늦은 시기의 사람은 명나라의 송렴(宋濂: 1310~1381, 자는 景濂)인데 퇴계가 태어난 해로부터 불과 120년 전에 죽었다. 시대적으로 보면 1000년 이상의 세월을 포괄하고 있다. 퇴계가 차운한 중국 문인은 주자, 소식을 비롯하여 모두 12명에 달한다. 이 중에는 단 한 수만 차운한 경우도 있지만 주자와 도연 명의 경우에는 20수가 넘게 차운한 경우도 있다. 도연명의 경우는 모두 22수나 되는 시에 차운을 하였지만 연작시로 실제로는 2제에 해당한다. 반면 주자의 경우에는 모두 13제 35수나 된다. 왕소는 『 퇴계시학』에서 퇴계가 주자시에 화답한 시가 8제 30수라고 하였는 데 이는 제목에 주자가 들어간 것만 친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경우 도 실제 모시인의 시를 차운하였다고 밝히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이외에 퇴계가 중국문인들의 시에 차운한 것으로 특이한 경우는 한 시에 여러 번 차운한 것과 추차(追次)한 시가 많은 것을 들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소식의 예를 들 수가 있는데 定惠院寓居月 夜偶出이라는 시의 경우 한 수의 시에 시간적 차이를 두고 거듭 차운을 하였다. 十一月二十六日松風亭下梅花盛開시의 경우에는 소식이 같은 운자를 사용하여 2수를 지었는데 퇴계도 두 수를 지 었다. 후자의 경우는 남이 차운한 시에 다시 차운한 경우를 말한 다. 특이하게도 한유의 시를 추차한 것이 많은데 謁衡嶽廟, 遂宿 嶽寺題門樓의 경우는 주세붕이 먼저 차운을 하였고, 杏花. 效王 梅溪, 次韓昌黎韻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송나라 매계 왕십 붕(王十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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