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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국공립박물관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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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史를?.J 백제 辰斯王7년條에 宮室을 중수하여 못을 파고 동산을 갖추어 奇萬異휴를 길렸다 는 기사나1) 東城王32년條에도 臨流聞을 궁궐 동쪽에 일으켜 못을 파고 奇萬을 걸렀다고 보인 다2 ) 또 『三國遺事』에서는 細烏女가 싼 고운 비단을 주어 하늘에 제사를 올리게 함으로써 일월이 다 시 빛을 얻게 되어 이 비단을 국보호 보판하고 그 창고를 「貴~E.庫」라고 불렀다 하였다.3) 또 萬波 息짧條을 月城의 天尊庫에 소장했다4 )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저장고는 『三國遺事』에 많이 보이 고 있다 5) 비슷한 시기 日本의 正슐院이 일본 황실의 보고로서 현존하고 있어 아마도 같은 성격으로풀이된다 경주의 안압지에서는 동물의 우리, 동물에게 물을 먹인 씹權 등이 발굴되었다 또한 부근에서 호랑이뼈, 곰의 뼈 등이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동물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못 한 가운데 우물정(井) 모양의 나무틀에는 개펄 흙이 차 있어 水草를 길렀다고 해석되어 이것은 바로 동물원 과 식물원의 존재를 인청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왕조초기단계의 수집보관시설을 갖추고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기도 했떤 것으로 해석되어 유럽에서의 박물관 發達史와 다름없음이 증명된 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동물원, 식물원의 존재를 알 수 있고6 ) 大平휴에는 태자의 펀액을 걸고 名花 異果와 珍玩之物을 布列하였다고 보인다 7) 殺宗19년에는 珍玩書畵를 수집하고8 ) 의종20년에는 진 기한 물건들을 ‘陳列’했다고 하였다9) 또 『宣和奉使高麗圖*잃 宮嚴條를 보면 長和願은 나라의 보 물을 저징하고 경비를 엄하게 했다고 하였다. 또 寶文開과 淸藏開10) 에는 짧書와 書畵를 보판하고 있다 하였다. 容宗16년 (12 1)에는 청연각에 송에서 보낸 서화를 宣示했다 하여 ‘宣示’ 11l라는 용 어를 써서 역시 진열한 것을 알 수 있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威興誌』宮室條에 이태조 구저인 慶興願에 絲효, 日月圓鏡,런輯長購 등을 1:11 장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러한 기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역대 제왕의 수집품이 남아 있지 않는 것은 兵火와 재난으로 멸실 했음을 짐작케 한다.

Ⅰ. 고대사에 보이는 박물판의 기능 Ⅱ. 근대화 과정에서의 한국박물판 1. 대한제국의 왕실박물관 2. 일제치하에서의 박물관 3. 광복 이후의 박물관 Ⅲ. 내일의 과제 1. 박물판사정립 2.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매장문화재 보존관리 3. 공공박무로간과 국립박물관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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