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검색
최근 검색어 전체 삭제
다국어입력
즐겨찾기0
커버이미지 없음
KCI등재 학술저널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기억과 창의적 활동에 관한 연구

  • 115

이 논문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집단기억과 사회변혁에 대한 창의적 활동에 관한 연구이다. 이 연구를 통해서 동학의 생성과 전파, 동학혁명과 농민전쟁의 논쟁, 정읍의 동학농민혁명 유물과 유 적지, 동학농민혁명관의 집단기억 표출과 사회적 망각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동학의 창도자 수운 최제우(1824~1864)는 오랜 수련 끝에 경신년(1860) 4월 5일 한울님(神)을 만 났고, 한울님과 대화를 하였으며, 한울님으로부터 받은 무극대도(無極大道)라는 천도(天道)를 학문으 로 체계화하고, 한울님의 마음을 회복하고 실천하는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수도법을 정해 교도와 일반에게 자신의 종교사상을 펼쳤다. 수운으로부터 도를 물려받은 해월 최시형은 일상의 일 그 자체가 한울님(事事天)이고, 사람이 매일 같이 사용하는 물건 그 자체가 한울님(物物天)이라고 설명하고, 시천주(侍天主)의 가르침을 일상생활 에 적용하여 해석하고, 도의 생활화를 통해 삶의 신성성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생활의 성화를 이룩 함으로써 후천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열어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이를 실천하였다. 동학혁명 당시에 의암 손병희는 동학군의 통령(統領)으로 진두지휘를 하였고, 위난의 시대에 해월 로부터 도통(道統)을 전수받은 후, 1905년 12월 1일 개혁운동단체 성격의 동학을 민족종교단체 성격 의 천도교로 개칭하였다. 동학시대의 한계에 직면한 제3세 교조 의암 손병희는 천도교를 근대종교로 서 제도화를 추진하면서 실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계도와 계몽운동을 전개하였고, 인재양성을 위 해 교육에 투자는 물론 여론형성과 정보전달을 위한 언론운동,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천도교도들에 게 3ㆍ1 독립운동 등을 주도하도록 지원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동학사상과 동학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것이며 그 지도자인 전봉준 은동학의 접주로서 동학도들과 수탈당한 농민들의 봉기를 통해서 전국적인 규모의 혁명 성격의 사회 개혁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결론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은 동학 창도자 수운 최제우의 교조신원운동에서 시작되었고, 조선후기 사회의 삼정문란과 수탈학정에 대한 항쟁이었다. 집단기억과 창의적 활동을 통해서 동학농민혁명기념 관은 개화기의 외세침략에 대한 자주적 국권수호와 후천개벽을 위한 사회개혁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쌍방향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Ⅰ. 서론 Ⅱ. 동학과 천도교의 관계 Ⅲ. 동학혁명과 농민전쟁의 논쟁 Ⅳ. 정읍의 동학농민혁명 유물과 유적지 Ⅴ.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집단기억과 망각 Ⅵ. 결론 : 동학농민혁명정신 기반의 창의적 활동 방안 참고문헌?웹사이트

로딩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