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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한국의 구제발굴에서 건립된 선사유적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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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9월 1일부터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근무한 것으로부터 보면, 필자는 올 해가 50주년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연세대학교 박물관(´65. 9 ~ ´76. 10)에 이어 충북대학교 박물관(´76. 11 ~ ´07. 2)에 근무?관계를 갖고 있으면서, 많은 선사유적 발굴을 하게 되었다. 공주 석장리유적과 제천 점말유 적은 모두 학술조사로 진행되었고, 팔당댐 수몰지역조사로 실시된 양평 양근리유적과 양평 앙덕리 고인돌유적 조사는 구제발굴을 통한 학술조사에 대한 큰 의미를 필자에게 크게 안겨주었다. 이러한 조사활동은 충북대학교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거의 모든 조사활동이 대학박물관을 중심 으로 구제발굴을 주로 맡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단양 구낭굴 조사만이 오로지 학술발굴이고, 기타 조사는 구제발굴이었는데, 그 가운데 대청댐?충주댐?주암댐?보령댐 등의 수몰지역과 중 부고속도로건설?과학산업단지(오창?오송)건설?일산 신도시 건설 등 모두 구제발굴로 이어졌으 며, 여기에서 조사된 유적 가운데 수양개?조동리?가와지 유적 등에 세워진 각기 선사박물관은 모두 구제발굴에서 고고학의 목표(goal)처럼 조사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그 연구를 재현?복원하는 박물관을 세우도록 노력하였다. 그러한 노력들은 이미 관계기관에서 세운 계획들과는 상치하는 일이어서, 그들과의 마찰?갈등 이 수반되어 그들과의 힘든 이해와 설득은 상식 밖의 일로 치부되어 힘든 과정을 거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여 수양개유적은 첫 발굴로부터 23년, 조동리유적은 10년, 가와지유적은 23년이 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수양개유적은 사적 제398호로 지정되고 이를 기념하는 국제회의를 지금까지 19회 나 개최하여, 이제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유적과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되었다고 자부 할 수 있다. 조동리유적은 충북기념물 126호로 지정되었고, 해당기관(충주시)에서 주도한 박물관 건립에 대한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가와지볍씨 박물관은 해당기관의 책임자 (고양시장 최성)가 볍씨의 의미를 높이 사 시정목표의 하나로 세워두고, 활발한 박물관 활동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이 박물관들의 학술활동은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앞으로 문화융 성의 큰 목표를 국가에서 세워두고 있기에 그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겠다. 필

Ⅰ. 들어가기

Ⅱ. 구제발굴과 선사유적 박물관

Ⅲ.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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