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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明代 軍制史의 제문제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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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中國史硏究》제14집(중국사학회, 2001년)에 <明代의 軍制史의 諸問題〉라는 제목으로 명대 군제사에 관한 문제를 명대 군호의 성립과 요역, 軍冊의 편조, 위소제의 성립과 위소 등의 주제로 나누어 살펴 보았다. 본고에서는 지면관계로 위의 글에서 다루지 못한 명대 군제사의 중요한 부분인 京營외 설립과 변천, 邊鎭체제로의 이행, 모병제의 시행, 그리고 군향조달시스템의 문제를 계속해서 다루겠다. 주지하다시피 명 중기가 되면 위소제의 경제적 기반이었던 군둔제의 붕괴, 은경제의 침투와 균요법의 실시, 黃冊, 이갑제 지배체제가 이완되기 시작한다. 더욱이 북변에서는 몽골의 일족인 오이라트의 에센이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명조에 통교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명조가 제시하는 조건과 맞지 않자 자주 북변을 소란케 하였고, 마침내는 正統 14년(1449)에 ?肅· 陜西·山西방면으로 대규모 침공을 개시해 왔다. 이 당시 정통제는 조정관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환관 王振의 뜻에 따라 가장 강력한 군대인 京營을 포함한 80여만의 대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섰다가 土木慶에서 적에게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되었다.

Ⅰ. 머리말 Ⅱ. 京營의 설립과 변천 Ⅲ. 邊鎭體制로의 이행 Ⅳ. 모병제의 시행 Ⅴ. 군향조달시스템 Ⅵ. 남겨진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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