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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高麗隨院僧徒再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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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史 兵志에 수록된 隨院僧徒관련 기사에 대한 기왕의 견해를 보면 그 시각이 몇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 첫째는 사회경제적인 입장에서 고려의 수원승도를 사원에 소속된 전호층 또는 가내노예적인 성격올 지닌 계층으로 보는 시각이다. 白南雲을 비롯하여 李基白·閔丙河·姜晋哲·金炯秀의 견해가 그것이다. 백남운은<독립적인 생계를 꾸리기 위하여 사원전을 경작하거나 기타의 노역에 종사하는 농노적 존재>라고 하였고, 이기백은 <사원에서 각종 노역에 종사하는 자로서 그 중에는 잡역에 종사하는 가내 노예적 성격을 가진 자가있는가 하면 사원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여 일정의 양을 사원에 납부하는 전호적인 자도 있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 민병하는 <일반 하층계급이 逃役 입산하여 형성된 승려층으로서 노비와 거의 다름이 없고 사원전의 경작노동에 종사한 계층이라 하고, 강진철은 <사원전이 사사노비와 하급승려의 노동력에 의해 경작되었는데, 여기에서의 하급승이 수원승도였으며, 그들은 사원에 투탁할 때 자신의 토지를 기진하고 자신은 그 토지를 借耕하는 형식을 취한 자들 이라고 하였다. 또한 金炯秀는 <수원승도를 사원에 투탁한 무전민으로서 농업생산력의 저급성으로 인해 공동체로 부터 탈락한 민이 사원 주위에 촌락에 형성하여 거주하면서 寺投을 담당한 자들>이라고 하고, 明宗 18年 3월의 制에 <道門 僧人의 諸處 農舍에서 責戶 良人을 冒認하여 부리고, 또 추악한 紙布를 강제로 빈민에게 대여하여 이식을 취함을 모두 금지하라는 기사를 근거로 사원에서 부릴 수 있는 民이 따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같이 사원에서 傭田을 분급받고 사원전의 경작에 동원된 자들이 수원승도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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