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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弓裔의 北原京 占領과 그 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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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삼국시대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격동적이면서 민족의 에너지가 왕성하게 뿜어지던 시기였다. 이때는 엄혹한 신분규제인 골품제의 쇠사슬이 끊어졌다. 아울러 무려 1천 년간이나 심장부 역할을 했던 한 줌 경주 땅 안에서 소수 귀족들이 주도해 가던 시대는 종언을 告하게 되었다.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는 한반도 전체로 다각화되고 재편되는 양상을 띠었다. 그뿐 아니라 철벽같았던 신분의 장벽이 허물어졌기에 능력에 의한 승진이 가능하였다. 농민들은 과중한 이중 수탈에서 해방되었다.

Ⅰ. 머리말 Ⅱ. 궁예의 出身과 성장 과정 1. ‘弓裔’ 이름의 의미 2. 궁예의 歷程 Ⅲ. 北原京 점령 과정 1. 북원경의 내력 2. 비뇌성 전투 3. 문막 전투 4. 고려 건국의 苗床으로서 원주 Ⅳ. 고구려 부활의 基盤 국원성과 평원성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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