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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미륵사지 서탑 사리봉안기 출토에 따른 제설의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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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09년 벽두에 발견된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치에서 나온 사리봉안기를 통해 드러난 여러 문제점을 사안별로 정리한 것이다. 먼저 「삼국유사」 무왕조의 서동설화를 어떻게 해석할까의 문제이다. 지금까지 설화는 사실을 어떻게 반영할까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였다. 이에 설화 연구에 대한 방법론을 제기하였다. 다음으로 무왕과 사씨세력의 정치적 관계 변화상올 살펴보았다. 두 세력은 무왕 초기 협력관계에서 점차 결별하였다. 그 결과 의자왕은 즉위 초기 국주모가 죽자, 이를 틈타 사씨를 중심으로 한 외가세력을 축출하였다. 미륵사는 3원 3탑의 독특한 양식을 지닌다. 이를 중원과 동원 ? 서원의 독립된 개체로 나누어, 중원은 법화신앙자인 선화공주가, 동원 ? 서원은 미륵신앙자인 사택적덕의 딸이 각각 건립하였다고 보는 견해와 일정한 기획 의도 하에 건립되었다는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또한 사비들 중심으로 한 석가신앙파와 익산을 중심으로 한 미륵신앙파가 대립되고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견해들은 모두 구체적 중거를 결여한 주장으로, 미륵사의 발굴 결과를 더욱 세밀하게 고찰하여 연결시킬 필요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왕궁리 3층석탑이 사리봉안기의 발견과 함께 7세기 백제시대로 상향시키는 견해가 나왔다. 이는 왕궁리 석탑밑의 정방형 판축층이 장방형 판축층으로 수정됨에 따라 더욱 힘을 얻게 되었으나, 판축층에 대한 세밀한 검토 이후 확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Ⅰ. 머리말 Ⅱ. 기록과 사실의 괴리 Ⅲ. 무왕과 사씨세력 Ⅳ. 미륵사 건립의 사상적 배경 Ⅴ. 사리봉안기의 여진 Ⅵ.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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