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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플라노 드 카르피니의 『몽골인의 역사』에 보이는 몽골사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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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년, 우구데이 카안은 바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제2차 서방 원정군’을 파견하였다. 이 원정군은 킵차크 초원과 동유럽, 러시아 등을 정복하였다. 그 결과 서유럽은 ‘지옥에서 보낸 타르타르의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고, 교황은 다시 있을지 모르는 몽골의 공격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카르피니는 교황이 몽골의 군주에게 보내는 두 통의 편지를 들고, 1245년 4월 6일 리옹을 출발하였다. 험난한 여정에도 불구하고 1246년 7월 22일 카라코룸 근처에 도착해 새로운 대칸으로 선출되는 구육의 즉위식에 참석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런 다음 같은 해 11월 13일 카라코룸을 출발해 1247년 가을 리옹에 도착했다. 그는 귀환 도중 루시에서, 그 동안 보고 들었던 것을 토대로 『몽골인의 역사』(Historia Mongalorum)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교황에게 바쳤다.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먼저 몽골의 자연과 기후, 종교, 관습 등에 대해 간명하게 서술하였다. 이어서 칭기스가 몽골고원의 유목민을 통합하는 과정, 몽골 군대의 편제와 구성 원리, 몽골 대칸의 위엄과 몽골군대의 엄격한 군율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그리고 몽골인의 전투방법, 정복지역에 대한 관리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카르피니는 대몽골국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관찰하고 기록하였다. 제국의 행정을 책임지고 있던 친카이, 카닥, 발라 등 고위관리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카르피니는 구육 칸을 직접 만났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그가 기독교도라고 적고 있다. 물론 구육이 기독교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종교에 비해서 특별대우를 해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유라시아를 아우르는 세계 제국으로 웅비하고 있던 대몽골국의 수도인 카라코룸에는 다양한 이방인들이 존재하였다. 카르피니는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오거나 끌려 온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몽골의 내부사정에 대한 정보를 얻어들었다. 특별히 언급해야할 것은 ‘솔랑기(Solangi)’에서 보낸 사신에 대해 여섯 차례나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몽골 사람들은 지금도 한국을 ‘솔롱고스(Solonγos)’라고 부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것도 사전정보조차 불충분한 상황에서 몽골에 다녀온 카르피니의 여행기록은 비록 4개월 정도의 짧은 체류기간이었지만,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어떤 부분에서는

Ⅰ. 머리말 Ⅱ. 카르피니의 몽골 사행 배경 Ⅲ. 몽골사에 대한 인식 Ⅳ. 맺음말: 몽골 공격에 대한 대응책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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