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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李鴻章의 對外政策 硏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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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이홍장의 대 조선 정책의 핵심인 조선 속국명분론이 각 시기마다 확연히 상이한 정책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에 주목하여 3시기로 나누어 그 전개양상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1시기는 강화도조약 전 시기로 전통적인 속국명분론을 주장하였고, 2시기는 강화도조약 후부터 임오군란까지로 연미정책을 산두로 해서 속국을 명문화하려고 힘쓴 시기이며, 3시기는 임오군란부터 청일전쟁까지로 강압적으로 종주권을 행사하는 시기이다. 1시기에는 이홍장이 전통적인 속국명분론 정책을 전개하므로 조선은 비록 중국의 속국이나 내정은 자주라고 주장하였다. ‘속국’과 ‘자주’란 두용어가 하나로 묶어짐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중조중심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일본을 상대하고, 상대가 일본이니 싸울만하고 승산이 있다고 자부했을 것이고, 중일 수호조약을 맺은 이래 일본을 상당히 우호적으로 생각하여 진일보 일본과 같이 외교연합전선을 구축해서 구미와 대항하는 구도를 꿈꾸고 있었다. 2시기에는 이홍장이 ?강화도조약? 후에 조선에서 실추된 청의 위상을 복귀하고 싶었는데 별 성과 없이 또 일본에게 琉球종주권을 뺏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 해결책으로 이홍장은 외세를 끌어들여 남으로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북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는 나라, 조선이 중국의 속방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줄 나라와 조약 체결이 절실했으며 그렇게 해서라도 속국명분론이 입각한 종주권을 계속 주장하고 유지하기를 희망했다. 이에 열강 중에 미국이 가장 공평하고 순하며 선량하다고 여겼고 특히 ‘다른 나라를 침략할 의사가 없다’, 또 ‘분규를 잘 해결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聯美’하면 조선이 유리할 것이라고 여겨 연미정책을 선두로 해서 미국, 영국, 독일 등 열강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 3시기에는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종주권 행사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청의 종주권주장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그 형태가 종전의 방식과 완전히 달라 있었다. 임오군란 이전이 전통적인 속국 명분론에 입각한 외교 문서상에서만 주장하는 것이라면 임오군란을 계기로 청은 종주국으로 무력을 앞세워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력 행사를 실행하는 단계로 전환을 보게 되었다.

Ⅰ. 서론 Ⅱ. 1시기: 傳統的인 屬國名分論時期 (강화도조약이전) Ⅲ. 2시기: 屬國名分論 文書化時期 (강화도조약에서 임오군란까지) Ⅳ. 3시기: 屬國名分論 强化時期 (임오군란에서 청일전쟁까지) Ⅴ.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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