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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李正己 一家 藩鎭의 領域 變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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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 난 말기인 上元2년(761) 12월 平盧節度使侯希逸이 靑州지역으로 들어오자, 肅宗은 그를 平盧淄靑節度使에 임명하고 靑?密?登?萊?海?齊?淄?沂?滄?德??11주를 관할하게 하였다. 다만, 이는 아직 명목적 성격이 강하였다. 이어 보응 원년(762) 5월 侯希逸이 청주를 함락시키자 代宗은 그를 淄?靑?齊?沂?密?海6州를 관할하게 하였다. 같은 해에 ‘山東’ 藩鎭들이 다시 개편되었는데, 후희일은 靑?淄?齊?沂?密?海?登?萊?泗9州를 관할하였다. 다음해인 광덕 원년(763) 5월 후희일은 더 ?州를 관할하여 모두 10주를 거느렸다. 대종 영태 원년(765) 5월 李正己는 후희일을 몰아내고 10주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대력 10년(775) 정월 魏博節度使田承嗣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정기는 전승사로부터 德州를 빼앗았으나, 다음해에 泗州를 永平번진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같은 해인 대력 11년(776) 5월 ?宋藩鎭의 李靈耀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정기는 그 중의 ????曹?徐??5주를 빼앗아 모두 15주를 거느리게 되었다. 이정기의 아들 李納이 德宗과 싸움을 벌이던 중인 건중 2년(781) 10월 徐州가 당조로 투항하고, 또 다음해 4월에는 德州와 ?州가 당조로 투항하였다. 이로써 이납은 12주를 거느렸다. 이납 등이 덕종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후인 정원 6년(790) 2월 成德節度使王武俊관하의 ?州가 이납에게 투항하였기 때문에 이납은 일시 13주를 거느렸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이납은 덕종의 중재로 체주를 다시 왕무준에게 돌려주었으나, 체주에 속한 蛤?鹽池는 그대로 차지하였다. 덕종 정원 8년(792) 왕무준이 李師古로부터 합타 염지를 빼앗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헌종 원화 12년(817) 10월 淮西節度使吳元濟가 敗亡하자 李師道는 두려워하여 다음 해 정월 長子를 入侍시키고 沂?密?海3주를 조정에 헌상하겠다고 하였다. 헌종은 이를 허락하였으나, 얼마 후 이사도가 이를 철회하였다. 마침내 이사도는 원화 14년 (819) 2월에 패망하였고, 이 달에 平盧軍은 세 번진으로 나뉘었다.

Ⅰ. 머리말 Ⅱ. 安史의 亂과 ‘山東’ 藩鎭의 설치 Ⅲ. 平盧淄靑節度使 侯希逸의 영역 Ⅳ. 李正己의 영역 확장 Ⅴ. 李納 시기의 영역 축소와 이후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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