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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대몽골국 초기 異文化와 宮廷의 外交典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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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대몽골국(Yeke Mongγol Ulus) 초기에 몽골초원에 존재했던 다양한 이방인과 이문화의 흔적과 궁정에서 행해진 외교전례의 실상을 살펴보았다. 쿠빌라이 카안(Qubilai Qa’an)이 제국의 중심을 칸발릭Qan Baliq[大都]으로 옮긴 후에는 더욱 다양한 이방인들이 대몽골국을 방문하거나 몽골의 통치에 협력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라 대몽골국 성립을 전후한 시기에 이미 다양한 이방인들이 존재하였다는 점을 밝혔다. 대몽골국이 성립되면서 문서행정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고, 타타통가와 친가이, 발라 등 다양한 출신의 인재들이 그 기초를 닦았다. 이어서 몽골을 방문한 중세 서양의 수도사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몽골 궁정의 외교전례의 실상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외교사절은 궁정에서 수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말에서 내리고, 수석 서기가 호출할 때까지 기다렸다. 이후 호출을 받고는 숨긴 무기나 유해한 것을 지니지 않았는지 몸수색을 받고 궁정 안으로 들어갔다. 특히, 궁정으로 들어갈 때는 문지방을 밟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받았다. 대칸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관리와 통역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카르피니는 훌륭한 통역을 만났지만, 루브룩이 방문했을 때는 좋은 통역이 없어 많은 불편을 겪었다. 이것은 당시 몽골에게 유럽이 그리 중요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뭉케 카안(M?ngke Qa’an)이 루이(Louis) 9세에게 보낸 문서를 통해, 대몽골국의 카안이 발행하는 명령문의 정형구인 “영원한 하늘의 힘에 의해(m?ngke tngri-yin k???n-d?r)”로 시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보았다. 아울러 몽골의 ‘세계정복 선언’의 일면도 살펴볼 수 있었다.

Ⅰ. 머리말 Ⅱ. 대몽골국 초기 異文化의 모습 1. 몽골고원으로 유입된 초기 異文化 2. 카라코룸의 異邦人과 그 文化 Ⅲ. 대몽골국 초기 宮廷의 外交典禮 1. 문서행정과 관료제의 초기 모습 2. 궁정 외교전례의 실상 3. 궁정에서 通事?譯史의 역할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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