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사는 赴京使行이 왕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명조 관료의 말을 적확하게 듣고 이해한 후 三使에 전달해야 했다. 동시에 사행의 建言도 명쾌하게 명조 관료에게 전달하여 외교활동에 차질을 빚지 않아야 했다. 특히 조선내부의 기밀에 관계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여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되었다. 조선은 통사에게 명조 측에서 묻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다. 천문과 같은 비밀에 관계되는 사항은 사행의 事目에 기재하지 않고 별도로 한 통에 적어 路中에서 외우게 한 뒤 의주에 도착하면 두고 가게 할 정도였다. 게다가 변방 방어에 관한일은 통사 자신들이 미천한 신분이라 알지 못한다고 답변해야 했다. 통사가 길을 떠나기 전 명조의 관료들의 질문을 예상하고 답변을 일러주었을 정도로 통사의 입을 단속시켰다. 부경사행에 참여하는 통사는 조선 초기에는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내려올 수록 이 숫자는 점점 증가하였고, 세종 말에는 부경통사의 선발 기준을 북경에 다녀 온 기간의 長短에서 輪次로 보내도록 정했다. 중종연간이 되면 이 규정도 무너져 통사의 숫자는 무려 12명에 달했고, 임란을 전후해서는 그 수가 자그마치 20여 명까지 대폭으로 증가하였다. 통사는 다양한 직책을 띠고 요동도사를 거쳐 북경에 들어가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 즉 조선 출신의 태감, 조선에 들어왔던 明使, 조선과 관련을 맺고 있던 통사나 序班을 유효하게 활용하여 왕명을 완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통사는 명 환관들의 심한 감시를 무릅쓰고 황제의 詔書?勅書나 관료들이 열람하는 朝報?邸報, 그리고 변경에 관련된 내용을 보고한 塘報 등을 등사해 왔다.
Ⅰ. 머리말 Ⅱ. 통사의 종류와 임무 1. 赴京通事의 선발 2. 赴京通事의 편성 Ⅲ. 堂上通事와 上通事의 임무 1. 사행의 업무 총괄, 당상통사 2. 상통사의 편성 시기와 임무 Ⅳ. 조선 외교의 최전선, 요동도사 1. 요동도사를 통한 외교 활동 2. 정보탐지의 구조 및 활용 Ⅴ. 북경에서의 외교 활동 1. 사행의 공식절차 2. 통사의 외교 조력자들 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