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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高句麗와 倭의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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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書紀⌋ 欽明紀?敏達紀에 수록된 고구려 사절의 월 표착과 귀환기사는 고구려가 對倭外交에 나섰다는 사실을 전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하지만 양국이 처음으로 대면한 사정을 전하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연구에서는 내용 분석이 미진하였다고 생각한다. 고구려 사절은 倭王을 사칭한 월 지역의 豪族에게 농락당하였고, 2년 넘게 왜국에 체류한 뒤에야 國書를 왜국 조정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왜국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고구려가 대왜외교에 나섰으며, 왜국과의 관계 개선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점에서 570년에 왜국에 건너간 고구려 사절이 2년이 넘는 기간동안 현지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양국의 交涉史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기간에 걸친 왜국에서의 체류에서 얻었을 見聞도 그러하지만 왜국의 대외전략을 살피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후속하여 사절 파견이 이어졌다는 사실이 이러한 이해를 뒷받침해준다. 한편 고구려 사절에 동행했던 왜국 送使의 견문은 왜국 朝廷이 고구려를 재평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여겨진다. 고구려가 대왜외교에 나섰다는 사실은 고구려의 대외관계가 실제 이상으로 위협에 처해 있다는 오해를 불러오기에 충분하였다. 왜국의 입장에서는 특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왜국의 인식이 고구려의 실상과는 괴리가 있었다고 보면, 왜국 송사의 견문은 그것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왜국에 2년 간 체류했던 사절을 통해 고구려는 왜국에 대한 無知에서 벗어나 왜국의 실정에 대응하는 대왜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고, 고구려를 다녀온 송사의 견문은 왜국이 고구려를 재평가하고 교섭의 상대로 인정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양국의 교섭사에서 570~572년의 시기를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연유가 여기에 있다.

Ⅰ. 머리말 Ⅱ. 高句麗의 對倭外交와 사절단의 越 漂着 Ⅲ. 고구려 사절의 相樂館 抑留와 見聞 내용 Ⅳ. 왜국 사절의 고구려 見聞과 양국 관계의 변화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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