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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학술저널

?舊唐書? · ?新唐書? 裴行儉傳 譯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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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현경 2년(657) 12월 당은 西突厥을 평정하여 蒙池?崑陵2개의 羈?都護府를 설치하였고, 다음 해 5월 安西都護府를 龜玆로 옮기고 그 아래에 安西4鎭을 두어 서역 지배를 본격화하였다. 하지만, 당조가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틈을 이용하여 토번이 세력을 확장한 후 670년 4월 서역으로 진출하여 안서4진을 함락시켰다. 이에 당조는 비로소 토번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같은 달 安東都護薛仁貴를 邏娑道行軍大總管에 임명하여 10여 만 군대를 이끌고 토번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같은 해 8월 靑海부근의 大非川에서 唐軍이 거의 전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조는 토번에 대해 한동안 다시 미봉적 태도로 돌아섰는데, 이는 신라와의 ‘新唐戰爭’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676년 당조는 한반도에서 군대를 모두 철수하면서 한반도까지 잃게 되었다. 한반도(특히 고구려)에 대한 당조의 집착이 정책적 실패로 이어져 당조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이다(정병준,?吐蕃의 吐谷渾倂合과 大非川戰鬪-唐朝의 韓半島政策과 관련하여?,?역사학보? 218, 2013). 678년 당조는 李敬玄을 ?河道行軍大總管에 임명하여 18만을 이끌고 다시 토번을 공격하게 하였으나 이번에도 청해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당조는 지속적으로 토번의 침공에 시달렸고 그 여파로 마침내 東突厥이 부활하고 渤海가 건국되면서 당의 국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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